
극장 안이 한바탕 웃음으로 출렁였다. 실제로 웃어야 하는 장면이었다. 우디를 향해 누군가 "올드맨"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나도 따라 웃기는 했지만 이상했다. 올드맨이라니... 정수리가 훤해진 카우보이 장난감이라니.
토이스토리가 처음 개봉했을 때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미국으로 건너와 모든 게 낯설고 서툴던 시절, 주인 앤디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우디의 질투와 모험은 내 사춘기 세상과 참 닮아 있었다. 이어지는 2편에서 상처 입은 카우걸 제시가 등장했고, 3편의 쓰레기 소각장 불길 앞, 장난감들은 끝내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 장면 하나로 극장 안이 조용해졌다. 앤디가 대학에 가며 보니에게 인형들을 물려주던 장면을 볼 무렵, 나도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시간이 흘러 아이 넷을 데리고 온 가족이 함께 본 4편은 조금 더 심오했다. 새 주인 보니가 쓰레기통에서 건져낸 포크 인형 포키는 자꾸만 "난 쓰레기야"라며 탈출을 감행했다. 그 포키를 필사적으로 붙잡아 돌려보내던 우디는 문득 '주인의 사랑을 받는 것만이 장난감의 유일한 행복일까'라는 근원적인 고민에 빠진다. 결국 우디는 버즈를 보니 곁에 남겨둔 채, 보핍과 함께 스스로 새로운 삶을 선택해 떠났다. 늘 선택받기만을 기다리던 존재가 처음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간 것이다.
토이스토리 5를 보고 나서 아이들은 예상보다 심심했다는 평을 내놓았다. 전작들만큼 빵빵 터지는 웃음도 없고, 이야기 전개도 조금 잔잔했다는 것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나 역시 객관적으로는 토이스토리 시리즈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좋았다. 엄청난 웃음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큰 감동도 없었을지 모르지만 마음 한구석이 오래 따뜻했다. 마치 오랜 친구를 우연히 다시 만난 것처럼 말이다.
이번 이야기에서 장난감들은 새로운 시대를 만난다. 아이들의 손에는 더 이상 우디나 제시, 버즈보다 먼저 집어 드는 존재가 생겼다. 스스로 말을 걸고, 게임을 하고, 노래를 틀어주고, 무엇이든 알려주는 디지털 기기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더 똑똑하고, 더 인간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언뜻 보면 영화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대결을 그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 눈에는 조금 다른 영화였다. 디지털이 장난감을 이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하게 되는 질문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아직도 필요한 사람일까.' 그 질문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숨어 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는 세상이 내 앞에 끝없이 펼쳐질 것 같았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도 즐거웠고, 누구보다 빨리 달려갈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세상이 내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제 어렵게 익힌 것이 오늘은 이미 예전 방식이 되고, 젊은 후배들은 내가 처음 듣는 프로그램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다룬다.
집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아이들은 설명서를 읽지 않아도 새로운 기계를 척척 사용하고, 나는 사용법을 검색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주름이 하나 더 생기는 일이 아니라, 세상의 중심이 조금씩 앞으로 이동하는 것을 바라보게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였을까. 우디가 '올드맨'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괜히 마음이 쓰였다. 그는 한때 가장 특별한 장난감이었다. 아이가 가장 먼저 찾던 존재였고, 밤마다 함께 잠들던 친구였으며, 어떤 장난감보다도 소중한 리더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그의 자리는 조금씩 뒤로 밀려난다. 더 새롭고, 더 화려하고, 더 많은 기능을 가진 존재들이 나타나면서 그는 어느새 오래된 장난감이 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정말 늙는 것이 두려운 걸까. 아마 아닐 것이다. 우리가 두려운 것은 더 이상 누군가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일이다. 조용히 잊히는 일이다. 이번 영화에서 우디와 친구들이 끝까지 놓지 못했던 것도 결국 그것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도 평생 비슷한 경쟁을 하며 살아간다. 더 젊어 보이려고 하고, 더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하고,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고 애쓴다. 직장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심지어 SNS 안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내가 아직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마치 영화 속 디지털 기기들이 자신들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라고 외치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디가 특별했던 이유는 가장 최신 장난감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장난감이었기 때문이다. 앤디에게 우디는 성능이 좋아서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함께 뛰어놀고, 함께 잠들고, 함께 상상하며 어린 시절을 통째로 나눈 친구였기 때문에 특별했다.
아마 그래서 우리는 오래된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닳아버린 머그컵 하나, 색이 바랜 티셔츠 한 장, 아이가 어릴 적 품에 안고 다니던 인형 하나. 그것들은 이미 다른 것으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 그런데도 선뜻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물건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그 안에 우리의 시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도 비슷하다.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은 가장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가장 오래 내 시간을 함께 걸어준 사람인 경우가 많다.
밤에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가 문득 우디를 다시 떠올렸다. 정수리가 훤해진 카우보이 장난감이 이제는 낯선 영웅이 아니라, 나와 닮아가는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