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진=빅히트 뮤직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의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가 최근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Best Asian Pop Music Performance)’ 부문을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아시아 대중음악의 세계적 위상을 반영하고 다양성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 레코딩 아카데미의 설명이다.
그러나 방탄소년단(BTS)은 출품 대신 정중하면서도 단호한 거부를 선택했다. “음악은 지역이나 언어가 아니라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기를 바란다.” 짧은 한 문장이었지만 그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불참 선언이 아니라, 세계 음악계가 오랫동안 논쟁해 온 다양성과 공정성의 문제를 다시 제기한 선언이었다.
과연 다양성이란 무엇인가. 새로운 이름의 상을 만드는 것인가. 아니면 같은 무대에서 같은 기준으로 경쟁할 기회를 보장하는 것인가. 그래미의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K-팝을 비롯한 아시아 대중음악의 영향력이 세계 시장에서 커진 만큼 이를 별도로 조명하고 수상의 기회를 넓히겠다는 것이다. 그 취지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선의가 언제나 공정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BTS는 이미 세계 대중음악의 중심에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 아티스트다. 빌보드 차트를 석권했고, 스타디움 공연을 매진시켰으며, 미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A)에서는 최고상인 ‘올해의 아티스트(Artist of the Year)’를 수상했다. 빌보드 뮤직 어워드와 MTV 시상식에서도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유독 그래미에서는 본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물론 그래미는 대중적 인기보다 음악적 완성도와 전문가들의 평가를 중시한다. 상업적 성공이 곧 수상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세계적인 스타들 가운데서도 오랫동안 그래미와 인연을 맺지 못한 사례는 적지 않다. 그럼에도 BTS를 둘러싼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왜 세계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래미에서는 수상으로 이어지지 못했을까. 치열한 경쟁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고, 그래미 특유의 보수적인 심사 성향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미국 음악 산업이 오랫동안 영어권 중심의 문화 속에서 발전해 온 만큼 의도적인 차별은 아니더라도 문화적 친숙함이나 무의식적인 편향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반대로 BTS가 아시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상하지 못했다고 단정할 근거 역시 충분하지 않다.
분명한 사실은 그래미를 둘러싼 다양성과 대표성 논란이 BTS 이전부터 이어져 왔다는 점이다. 비욘세와 켄드릭 라마를 둘러싼 논란,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가 비판했던 ‘Urban’이라는 분류, 위켄드의 보이콧까지 그래미는 시대의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신설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레코딩 아카데미는 포용을 말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것이 ‘포용이라는 이름의 게토화(ghettoization)’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미 세계 팝의 중심에서 활동하는 아시아 아티스트에게 별도의 울타리를 만드는 것이 과연 다양성인가. 아니면 “주류는 따로 있고, 당신들은 이곳에서 경쟁하라.”는 또 다른 경계선인가. BTS는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새 부문은 그래미를 향한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트로피보다 원칙을 선택했다. 음악은 언어를 초월하고 국경을 초월한다. 팝은 특정 민족이나 특정 지역의 음악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고 섞이며 진화해 온 가장 보편적인 대중음악이다.
그런데 영어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시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다시 ‘아시안 팝’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우리는 장르를 구분하는 것인지, 사람을 구분하는 것인지 되묻게 된다. 진정한 다양성은 별도의 방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하나의 무대를 함께 사용하는 데 있다. 같은 기준으로 경쟁하고 같은 기준으로 평가받을 때 다양성은 비로소 차별이 아니라 공존이 된다.
이제 BTS는 그래미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아티스트가 아니다. 오히려 이번 논란은 그래미가 스스로 얼마나 공정하고 포용적인 제도인지를 설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겼다. 이번 불참 선언은 특정한 상 하나를 거부한 것이 아니다. 음악은 지역과 언어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작품 그 자체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그 오래된 물음을 세계 음악계에 던진 것이다.
아시아 음악을 진정으로 존중한다면 필요한 것은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기존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다. 어떤 언어로 노래하든, 어느 나라에서 왔든 그 어떤 수식어 없이 같은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다양성은 이름이 아니라 원칙이 된다. 세계 대중음악 최고의 권위는 새로운 상에서가 아니라, 새로운 시각에서 나온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