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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10년
08/31/26  

10년이나 됐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칼럼이 올라간 날짜는 분명 2016년 8월 29일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주로 딱 10년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주 글을 썼다. 일 년에 쉰두 번, 10년이면 얼추 오백 편이 넘는다. 숫자로 세어놓고 보니 갑자기 대단한 일을 한 사람 같지만, 정작 나는 별로 그런 기분이 들지 않는다.

사람이 무슨 일이든 10년을 쉬지 않고 하면 프로가 되어 있어야 할 것 같다. 운동을 10년 했으면 자세라도 제법 나와야 하고, 피아노를 10년 쳤으면 남들 앞에서 한 곡쯤은 겁 없이 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하물며 매주 글을 10년이나 썼다면 이제쯤 나는 ‘글이라면 맡겨주세요’ 정도의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희한하게도 그렇지가 않다. 여전히 첫 문장이 안 써지는 날이 있고, 한참 써놓고 몽땅 지우는 날도 있고,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 답답한 날도 있다.

그래서 10년을 썼다고 해서 이제 글 쓰는 일쯤은 능숙해졌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다만 확실히 달라진 것은 하나 있다. 글 쓰는 일이 이제 내 생활 속에 완전히 들어와 버렸다.

매주 어느 날쯤이면 자연스럽게 이번 주에는 뭘 쓰지 생각한다. 운전을 하다가도 생각하고, 샤워를 하다가도 생각한다. 아이가 툭 던진 말 하나를 듣다가 ‘어, 이거 괜찮은데’ 싶을 때도 있다. 그렇게 하나를 붙잡으면 며칠 동안 머릿속 한쪽에 넣어두었다가 컴퓨터 앞에 앉는다. 쓰고, 고치고, 다시 읽고, 제목을 붙이고, 마감해서 보낸다. 그러고 나면 며칠 뒤 또 슬슬 다음 이야기를 찾는다. 빨래하고 장보고 아이들 데려다주고 밥 하는 일 사이에 어느새 ‘글쓰기’도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돌이켜보면 참 성실하게 썼다. 여행을 가서도 썼고, 몸이 아파도 썼다. 시차가 바뀌고 집이 바뀌고 아이들이 자라고 내 생활이 통째로 뒤집히는 동안에도 마감은 이상하리만큼 꼬박꼬박 돌아왔다. 어떤 주에는 정말 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내게는 그냥 해야 하는 일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성실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멋진 대답은 없다. 나는 그냥 이걸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것 같다.

아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그랬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일이 벌어졌는데도 이틀 후 칼럼을 전송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시절의 글을 다시 펼쳐보는 일도 여전히 쉽지는 않다. 다만 그때도 나는 썼다. 글을 써서 슬픔을 이겨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슬픔은 글 몇 줄로 정리되지 않는다. 다만 세상이 완전히 멈춘 것 같은 때에도 이상하게 마감은 왔고, 나는 컴퓨터를 열었다. 어쩌면 그 반복이 그 시절의 나를 아주 조금씩 다음 주로 데려다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슬픔도 별일 없는 날들도 다 지나갔다. 지난 10년의 거의 모든 순간 곁에 칼럼이 있었다. 그래서 가끔 옛날 글을 보면 재미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나?’ 싶은 글도 있고, 지금이라면 절대 이렇게 쓰지 않을 것 같은 문장도 있다. 반대로 지금 읽어도 제법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하면 혼자 조금 으쓱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신기한 건 그 글 속에 당시의 내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때 무엇 때문에 웃었는지, 아이들이 어떤 말을 했는지. 당시에는 그저 이번 주 마감을 해야 해서 쓴 글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내 30대 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의 생활이 차곡차곡 들어 있는 셈이다.

요즘은 조금 곤란한 일도 생겼다. 쓸 이야기를 하나 떠올리고 신이 나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잠깐, 나 이 얘기 전에 하지 않았나?’
10년을 매주 떠들었으니 안 한 이야기를 찾는 게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가족과 아이들 이야기를 했고,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사는 이야기를 했다. 나이 드는 이야기도, 먹는 이야기도, 운동을 시작했다 그만두는 이야기도 몇 번이나 썼다. 그러니 오랫동안 내 글을 읽어온 독자라면 어느 날 칼럼을 읽다가 ‘이 여자 이 얘기 전에도 했는데?’ 싶을 수 있다. 그렇다면 아마 맞다. 미리 사과드린다.

나도 이제 오백 편이 넘는 글을 머릿속에 전부 저장해 놓고 살 수는 없다. 예전에 쓴 글을 그때그때 모두 검색해 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어딘가 찜찜하면서도 그냥 다시 쓰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런데 요즘은 그것도 꼭 나쁜 일인가 싶다. 생각해 보면 같은 이야기를 다시 쓴다고 해서 꼭 같은 글이 되는 것도 아니다. 10년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일이 지금은 전혀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같은 일을 놓고도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할 이야기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다.

10년 전에는 앞으로 10년 동안 칼럼을 쓰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누가 매주 한 편씩 10년 동안 써야 한다고 미리 알려줬다면 시작부터 겁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오백 편이 넘는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지만, 이번 주 한 편을 쓰는 것은 할 만하다. 그렇게 한 편을 보내고 또 한 편을 보내다 보니 어느 날 10년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10주년이라고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다. 이번 주 칼럼을 쓰기 전에도 나는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번 주에는 뭘 쓰지. 그리고 그다음 주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다 아주 괜찮은 이야기가 하나 떠오를지도 모른다. 신이 나서 쓰다가 중간쯤에서 갑자기 멈출 수도 있다.
‘잠깐. 나 이 얘기 전에 했나?’
쓰다 보니 10년이 된 것처럼, 아마 다음 이야기도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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