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er Call Saul
07/16/18  

지난 토요일 오후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작은 딸이 오랜만에 집을 찾았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던 중, 딸이 ‘아빠 요즘 Netflix에서 어떤 영화나 드라마를 보냐’고 묻더니 혹시 ‘Better Call Saul’을 봤냐고 물었다. 전에 아빠가 즐겨 봤던 ‘Breaking Bad’에 변호사로 출연했던 Bob Odenkirtk가 나오는 작품으로 아빠가 좋아 할 거라고 했다.

 

식구들이 모두 잠자리에 든 뒤에 혼자 남아 Better Call Saul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4일이 지난 수요일 저녁에 마지막 회를 보았다. 드라마는 총 3편의 시리즈로 구성돼 있으며, 각 시리즈마다 10회씩 총 30회 분량이었다. 매회 짧은 것은 42분, 긴 것은 56분 길이였으니 산술적으로 계산해보면 전체를 보기 위해 26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하루 4-5 시간 동안 Better Call Saul을 본 셈이다.

 

드라마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더더구나 드라마의 작품성이나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는 더욱 할 얘기가 없다. Better Call Saul을 언급한 것은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형제와 관련해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두 줄기의 이야기를 큰 흐름으로 한다. 각각의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가끔 양쪽이 만나기도 한다. 하나는 변호사 형제의 이야기로, 다른 하나는 마약 카르텔에 관한 이야기로 엮었다.

 

드라마는 형 ‘척’과 아우 ‘지미’의 많은 나이 차이와 성격이나 성장 과정이 전혀 다른 점을 부각시킨다. ‘척’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변호사 그룹의 변호사이고 ‘지미’ 어릴 때부터 말썽을 많이 부리고 문제를 많이 일으키던 트러블 메이커였다.

 

척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사회생활도 반듯하게 해서 변호사가 된 뒤에도 나름대로 명성을 얻고 실력이 있는 변호사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그러나 지미는 한때 사기도 치고, 크고 작은 문제에 관련되어 형 속을 어지간히 썩이는 생활을 했다. 그럼에도 온라인으로 법률 공부를 해서 그도 역시 변호사가 됐다. 그리하여 큰 기대를 갖고 척이 소속된 법률 그룹에 입사하려고 하나 척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척은 동생을 우려와 불신의 시각으로 지켜본다. 지미가 저질렀던 각가지 사건 사고 등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에 대한 질투도 크게 작용한다. 동생은 언변이 좋고 뛰어난 친화력을 통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쉽게 만들지만, 자신은 권위와 명예 등을 중히 여기며 지도자로 자처하며 살아가기에 지미는 늘 못마땅해 한다.

 

지미에 대한 이런 사고의 근본 원인은 어머니가 임종 시에 보여준 모습에서 기인한다. 당시 척과 지미는 병실에서 어머니를 간호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미는 배가 고프다며 먹을 것을 사러 나간다. 지미가 병실에서 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숨을 거두려고 하며 지미의 이름만 되풀이 해 부른다. ‘어머니 저는 지미가 아니고 척’이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어머니는 지미만을 찾는다. 늘 말썽이나 부리고 부모 속이나 썩히던 자식을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어머니는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임종 직전, 곁에 있는 자신은 안중에도 없고 동생만을 찾는 어머니를 보면서 척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의 심정은 묘한 표정에서도 읽을 수 있지만 의사와의 대화를 통해 더욱 분명해 드러난다. 어머니 운명 직전에 의사가 ‘척’에게 물었다. 혹시 연락할 사람이 있냐고. 척은 대답했다. 없다고. 그럼 혹시 이 병원 안에 다른 식구가 있느냐고 의사가 다시 묻는다. 만일 병원 안에 있다면 구내방송을 통해 빨리 오게 할 수 있다고. 그러나 척은 단호하게 말한다. 아무도 없다고.

 

얼마 후 음식을 사들고 병실로 돌아온 지미가 척에게 물었다. 어머니가 숨을 거두기 전에 아무 말씀도 없었냐고. 척은 대답했다. ‘No!’

 

1999년 11월, 어머니 장례를 마치고 4남매가 부모님이 살던 아파트로 와서 어머니 유품 등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막내 동생이 어머니 침대 밑에서 무언가를 꺼내 열심히 읽다가 내게 건넸다. 어머니가 일기 형식으로 당신의 심경을 토로하는 글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큰 아들인 나에 대한 걱정과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시종일관 큰 아들 이름이 계속 나왔다. 미국에서 너무 고생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기대하는 내용들이었다. 동생은 글을 읽으며 어떤 심정이었을까?

 

부모들은 말한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지만 손가락을 깨물었을 때 더 아픈 손가락은 분명히 있다. 그 손가락이 평소 아팠던 손가락이었다면 더 아플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이 차별이 아니라는 것을 손주들 재롱이 즐거운 이 나이에 깨닫는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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