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07/16/18  

7월은 덥다. 캘리포니아가 건식 사우나라면 한국은 마치 습식 사우나처럼 푹푹 찐다. 건조하고 뜨거운 여름은 태양을 피해 그늘로 들어가는 순간 한숨 돌릴 수 있지만 습하고 푹푹 찌는 끈적끈적한 여름은 어딜가나 덥다. 밤낮할 것 없이 덥다.

 

더 자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새벽부터 눈이 떠지는 이유도 더위 때문이다. 이미 끈적해진 몸으로 눈이 떠질 때면 상쾌한 아침과는 거리가 멀고 오늘 하루도 만만치 않을 거라는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아이들에게 ‘씻어라!’, ‘옷 입어라!’, ‘밥 먹어라!’, ‘양치해라!’, ‘책가방 챙겨라!’, ‘양말 신어라!’ 쫓아다니며 학교 갈 채비를 겨우겨우 마치고 막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 밖으로 나선다.

 

분명 아침에 찬물로 샤워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파트 밖으로 나가는 순간 땀이 나기 시작한다. 설상가상 빗방울도 하나둘 떨어진다. ‘아…… 분명 오늘 비 온다는 예보는 없었는데’ 하긴 언제부터 일기예보를 맹신했던가. 하늘을 보며 비 올 확률 50%, 50% 정도의 예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던가. 아무튼 우리 아파트에서 어린이집까지는 걸어서 2-3분 거리, 비가 쏟아지지 않길 바라며 일단 걸음을 재촉한다.

 

두달 후에 만 4세가 되는 막내가 활기찬 목소리로 묻는다.

‘엄마 오늘은 좋은 날이야? 더운 날이야?’ 어린이집 가는 길에 바람이 솔솔 부는 상쾌한 날이면 내가 ‘와! 바람부네. 오늘 날 참 좋다.’라고 말하곤 했더니 아이는 바람이 불면 좋은 날이라고 이해한 모양이다. ‘오늘은 더운 날이네!’라고 대답하는 내 목소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고 돌아서 걷는데 S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그녀는 동네이웃이자 우리 딸 친구의 엄마로 몇 번의 만남 이후 이제 막 마음을 나누기 시작한 사이였다. 전화를 받으니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한다. ‘언니! 지금 방금 언니 뒷모습 봤어요! 시간되면 같이 커피할래요?’ 얼굴, 목소리, 마음까지 예쁜 S씨의 한 마디에 입꼬리가 한껏 올라가고 갑자기 발걸음이 상쾌해진다.

 

기분 좋은 커피 한 잔 하고 돌아와 잠시 앉았는데 세 명이 같이 대화하는 채팅방에 한 친구가 ‘빙수먹고 싶다.’라고 문자를 보내온다. 다른 친구와 내가 동시에 ‘나도!’ 라고 대답하니 먼저 빙수 먹고 싶다고 한 친구가 다시 ‘12시에 잠실에서 만나!’ 라고 답을 보내 온다. 다시 몸을 일으켜 나갈 준비를 시작한다. 우리는 30년지기 초등학교 동창이자 어릴 적 동네친구들인데 지금은 사당, 가평, 송파로 흩어져 살고 있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만남 제의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나가는 발걸음도 룰루랄라 신이 난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미국에 오래 살다가 다시 돌아온 한국은 어떠냐고. 아직은 불편하고 낯설고 이해 안되는 일들이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형식적인 인사만 나누던 인연들이 서서히 마음을 나누는 인연으로 성장하는 동안 나의 마음도 더욱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지구 끝 어디라도 좋은 법이라고 좋은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점점 나도 이곳이 좋아진다. 나를 찾아주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신이 나는 한국의 7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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