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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07/23/18  

나는 미국에 살면서도 신혼여행을 하와이로 가지 않았다. 미국에 사는 동안 적어도 한 번쯤은 하와이를 찾을 기회가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에 하와이 대신 영화 ‘비치’ 촬영지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태국을 신혼여행지로 선택했다. 물론 갑자기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미국을 떠나면서 아쉬웠던 것들이 수백 가지도 넘겠지만 그 중 하나가 하와이에 가보지 못한 것이었다. 평생 한 번은 가봐야 한다는 그 좋은 하와이를 못 가보고 미국을 떠난 것이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더니 지금 나는 하와이 호놀룰루에 와 있다. 남편이 하와이로 출장을 오게 된 덕분에 함께 하와이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영화 ‘친구’ 속 명대사인 “니가 가라 하와이”의 그 하와이, 하와이로 여행을 다녀온 모든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며 찬사를 멈추지 못했던 그 하와이에 내가 와 있는 것이다. 집을 떠나 여행지나 해외에서 글을 쓰는 것은 유명 작가들이나 하는 것이라며 부러워했었는데 나도 이렇게 하와이 하늘과 바다를 보며 글을 쓰고 있다니 이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엇그제까지만해도 한국의 장마, 폭염, 열대야와 씨름하던 나에게 하와이는 파라다이스 그 자체였다. 호놀룰루에 도착하자마자 처음에는 호놀룰루 맛집, 와이키키 해변, 하나우마베이 같은 유명 명소들을 검색했지만 돌아다니다 보니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미국에 살 때 늘 갔었던 Starbucks, Costco, Target, TJ max, Nordstrom Rack과 같은 스토어들이었다. 그리고 매장 안에 들어서는 순간 미국 대형 마켓 특유의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마음이 편안해지고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리고 마치 어제도 왔었던 사람들처럼 자연스레 쇼핑을 하는 발걸음이 여행 중 최고로 즐겁기 짝이 없었다.

 

어제는 남편이 컨퍼런스에 가고 혼자 하루를 보내야 했는데 나는 제일 먼저 Starbucks에 가서 내가 미국에서 커피 대신 즐겨 마시던 핑크 드링크를 주문해 마셨다. 한국에는 없는 음료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몹시 섭섭했었는데 다시 미국 땅에서 만나니 그리도 반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저녁 때는 남편과 근사한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계획해 놓고는 정작 우리는 제일 가까운 Costco를 찾아가 평소 즐겨먹던 피자를 사 먹었다. 한 조각만 주문해서 둘이 나눠 먹자고 철석같이 약속을 하고는 주문하는 순간 무언가에 이끌린 듯 자연스럽게 두 조각을 주문하고 말았다. 말 안 해도 알겠지만 한 조각만 먹어도 포만감이 올 정도로 큰 Costco 피자를 페퍼까지 뿌려 야무지게 먹고 나니 “그래 바로 이 맛이야!” 감탄이 절로 나며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물론 한국 Costco 에도 같은 메뉴가 있지만 웬일인지 뭔가 맛이 다르다.) Costco 피자를 배불리 먹은 덕분에 근사한 저녁 식사는 물 건너 갔지만 우리는 꽤나 만족스러운 저녁을 보냈다. 미국에 사는 내내 어쩌다가 한국을 방문할 일이 생기면 근사한 고급 한정식보다는 길거리표 떡볶이가 더 먹고 싶었던 심리와 비슷한 것이랄까?

 

피자를 먹고 시간가는 줄도 모르게 폭풍 쇼핑을 한 후에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내가 휴양지에 와 있다는 생각보다는 고향에 와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몇 시간에 걸쳐 소소하게 사들인 생필품과 먹거리 한 보따리를 어깨에 짊어진 남편의 뒷모습이 마치 산타클로스처럼 보여 키득키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세계 최고의 휴양지인 하와이에 오면 해변에 누워 달콤하고 평화로운 바캉스를 즐기게 될 줄 알았건만 우리는 미국에 살 때 누리던 소소한 일상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는 마감하며 우리는 마주보고 "우리 왜 하와이까지 와서 이러고 있지?" 하며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웃음 속에 그 답이 있었다. 그대와 함께 웃는 오늘, 바로 이곳이 우리의 파라다이스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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