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1.5세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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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다
04/23/18  

사소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없는 일들.

밤중에 친구를 불러내어 추억을 안주 삼아 맥주 한잔 하고 싶다. 언제부턴가 밤 9시 넘으면 전화할 곳이 없다. ㅠㅠ

일어나고 싶을 때 잠에서 깨어 가사를 기억하는 90년대 흘러간 가요를 크게 틀어놓고 룰루랄라 노래를 흥얼거리며 샤워하고 싶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 대충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고 침대에 엎드려 발바닥은 천장을 향해 올리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다가 잠들고 싶다.

주말엔 남편과 침대에 누워 쥐포를 뜯어 먹으며 요즘 인기있다는 드라마 삼매경에 빠지고 싶다.

지치고 푸석해진 피부를 격려해 주고자 한 시간쯤 특별 마사지를 제공해주고 싶다.

밤에 세수하고 제대로 정성껏 기초화장을 해 본 지가 언제였던가……

방 한구석에 앉아 한때 나에게 아주 소중했던 물건들을 꺼내 한껏 센티멘탈해지고 싶다.

누군가에게 받은 편지들, 앨범 속에 빛바랜 사진들, 메모와 일기장……

 

기저귀 가방 대신 클러치를 들고 스키니진에 하이힐을 신고 혼자 쇼핑을 실컷 하고 싶다. 나만을 위해 구입한 물건이 담긴 두세 개의 쇼핑백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우리라.

연락이 두절된 친구들을 몽땅 소집해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근황을 보고 받고 싶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했다면, 친구를 닮은 아이가 생겼다면 오랜 공백을 책망하지 않겠다.

처음 연애를 시작한 고딩 커플처럼 남편과 하루 종일 손잡고 데이트를 하고 싶다.

차 안, 극장 안, 식당 안에서도…… 잡은 손 놓기가 싫어서 화장실도 안 갈 테다.

 

한 2박 3일 계획을 짜서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 아니 한 일주일쯤이 좋겠다. 관광이 아닌 휴양을 목적으로. 여행용 캐리어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만 상상해도 가슴이 쿵쾅거린다.

오로지 식사를 하기 위해 엘에이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을 찾아가고 싶다. 운전하고 왕복 2시간…… 헉……!

콘서트장에 가서 그 열기와 에너지에 흠뻑 빠지고 싶다. 이문세, 이승철, 이승환, 김건모, 서태지…… 이들의 콘서트라면 노래도 신나게 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운 이에게 손편지를 쓰고 싶다. 직접 고른 고운 빛 편지지에 번지지않고, 너무 굵게 써지지 않는 펜으로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어려서 나는 당장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 조바심 때문에 종종 배가 사르르 아파오곤 했다. 인내심 없던 꼬마가 커서 아줌마가 되었으나 여전히 인내심이 부족하여 이런 글을 쓰고있다. 한두 가지 정도는 공감해 줄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 전에는 마음만 먹으면 금방이라도 할 수 있었던 사소한 일들이 이젠 꿈같은 일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불행하냐고 물으면, 아니 그저 그리울 뿐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렇다. 이 그리움과 외로움의 부피는 지금 내가 마주한 현실의 무게와 견줄 수 있는 정도이기에 나는 오늘도 그럭저럭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내 마음대로 먹고 자며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때가 오면 바로 지금을 그리워할지 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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