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정의라고 부르는 나라는 없다
07/30/18  

또 한 사람의 유명 정치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평생 민주주의를 외치던 투사, 그리고 약자들을 위한 일에 앞장 서는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던 그이기에 목숨을 신념보다 가볍게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그가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졌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죽는 그날까지 세상에 한 거짓말에 대한 죄책감과 그동안 쌓아 온 인간적, 정치적 이미지 파괴로 인한 체면 손상 때문에 시달리다가 그 모든 것을 덮고 자신이 대표로 있는 정당을 살리기 위한 방법으로 죽음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다.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하면서 이전에 있었던 유사한 경우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대통령까지 역임했던 한 사람은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 자신의 가족들이 모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스스로 벼랑에서 몸을 던져 세상을 등졌다. 대통령 재임 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경유착 종식과 도덕정치를 역설했기에 가족들이 기업으로부터 큰돈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커다란 충격을 받았고 수치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목숨을 끊음으로 인해 실제 돈을 수수했다고 밝혀진 가족들조차 처벌을 받지 않았고, 사실에 대한 분명한 규명도 없이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세계 정치사에 재임 중의 부정부패가 드러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치인은 매우 드물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한국의 두 정치인의 자살이 더욱 충격적인 수도 있다. 하지만 목숨은 그 자체로도 하나밖에 없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명제 앞에서 어떤 경우의 자살도 합리성을 얻기는 힘들다. 더구나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선택이 자신이 느끼는, 오로지 개인적인 삶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대중들 앞에 숨겼던 무엇인가가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면 더더욱 큰 문제이다.

 

목숨을 스스로 버린 사람은 그로써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죽음이 모든 것을 용서할 것이라는 생각은 한참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다. 대중은 죽은 자에 대해 애도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부정까지 덮으려 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유명인의 죽음은 어떤 경우가 됐든지 두고두고 후세에까지 전해지며 역사의 전면에 남는다.

 

그래서 부끄러운 사실이 드러나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을 그의 이력을 들추며 의인인양, 열사나 애국지사인양 치장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게 되면 그의 죽음으로 세상에 명확하게 드러나야 하는 사건이 왜곡될 수 있고, 죽음 자체가 미화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죽음으로 얻으려는 그의 이익이 합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정한 돈을 받은 사실에 대한 부끄러움에 더해 죽은 후 자신이 속한 정당에 대한 지지를 당부한 것도 어찌 보면 사망 후에 벌어질지도 모를 특정 집단에 대한 손실을 미리 예방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죽음이 그 집단의 이익으로 이어질 것을 강구하려는 의도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앞의 두 정치인들이 자살을 택한 후 그가 속해 있던 집단의 지지율은 올랐다. 이는 한국 사회가 죽은 자에게 너그러운 문화를 가지고 있는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죽음이 모든 것을 덮을 수 있는 절대적인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그것이 사회를 병들게 하는 부정부패와 연관된 것이라면 죽음이 아니라 더한 수단을 동원한다고 해도 끝까지 파헤치고 밝혀 반드시 진실을 규명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정의이고 국가가 국민에게 주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비록 죽은 자일지라도 그가 저지른 부정부패는 예외 없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 국민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면 국민들은 자신의 국가가 투명한 국가, 정의로운 국가,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한 국가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돈을, 또 어떤 사람은 명예를 소중히 여긴다. 둘 중 어느 것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렇다고 불법적으로 얻은 부와 명예를 소중하다고 말한 순 없다. 더구나 불법적으로 부와 명예를 축적해 살면서 이웃돕기 성금 한 번 냈다고,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후원금 한 번 보냈다고 마치 영웅인양 미화해서는 안 된다. 같은 이치로 비록 가난하지만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었다고, 항상 그들 편에서 사회 정의를 이야기 했다고 그가 저지른 불법적인 사실을 모른 체해서도 안 된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정치인에 대한 애도는 산 자의 도리임이 분명하지만, 그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라도 그의 부정까지 눈 감아서는 안 된다.

 

그의 영정 앞에 몇 만 명의 시민이 조문을 했든지, 그의 장례를 국회장으로 하든지 그것은 한국 사회 구성원 다수의 묵시적인 동의에 의한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세상을 등지기 전에 드러났던 그의 부정부패까지 덮어지길 기대하는 국민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국민들 모두가 어떤 것이 정의이고 어떤 국가가 바른 국가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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