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07/30/18  

5학년인 큰아들은 1학기 때 학급부회장을 하더니 (우리 때는 반장, 부반장이라고 했었는데 요즘엔 학급회장, 부회장이라고 한단다) 전교 어린이회의에 참석하는 일이 꽤나 재미있었는지 2학기 때 다시 임원 선거에 나가고 싶다고 했다. 1학기 임원은 2학기 때 다시 임원이 될 수 없다고 하자 그럼 학급이 아닌 전교 임원 선거에서 부회장에 출마하겠다고 했다. 전교회장은 6학년 몫이고, 부회장은 5학년과 6학년에서 한 명씩 선출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나갈 생각을 하니 나름 고민이 많이 되었는지 월요일까지 출마 신청을 해야하는데 주말 내내 결정을 못 하고 고민하다가 월요일 아침 등교 직전에  “엄마, 나 나가볼래.”하는 것이었다. 아이에게는 “그래, 부담갖지 말고 한번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재미있게 한번 해봐.”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지만 내심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 1학기 때는 후보가 몇 명 되지 않았었는데 2학기 때는 부회장 후보만 9명이라니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었다가 괜히 기만 죽는건 아닐까? 아직 한국에 온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한국어도 서툴고 친구도 많지 않은데 너무 섣부르게 출마했다가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한국 엄마들 치맛바람은 보통이 아니라던데 나도 뭔가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주위에 수소문하고 검색에 돌입했다. 과연 나의 예상은 다르지 않았다. 검색하니 초등학교 임원 선거 준비를 도와주는 업체들의 광고가 즐비했다. 연설문 작성과 스피치를 도와주는 학원, 포스터와 피켓을 만들어주는 업체들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더욱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촉박하니 포스터 제작을 맡기는 편이 나을까 싶어 문의해 보니 10-20만 원은 줘야 한단다. 아이 임원 선거 포스터 제작에 그런 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뭔가 낯뜨겁고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어 포기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쉽사리 사그러들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아이는 나와 달리 굉장히 평온해보였다. 그리고 선거 운동이 진행되며 더욱 자신감을 얻는 듯 보였다.

 

 선거공약을 만들고, 연설문을 쓰고, 선거 포스터와 선거 운동 때 사용할 도구들을 만들고, 선거운동 구호와 노래를 만들고, 선거운동을 도와줄 사람들을 섭외하고, 삼 일 간 매일 아침 동생들과 함께 교문 앞에서 선거 운동을 하고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도 각 교실을 돌며 선거유세를 펼치는 것이 초등학교 선거라지만 제법 선거운동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공부 잘 하는 애들이 임원 후보가 되고 후보에 오르면 “너, 나 뽑아줄거지?”하며 구두 약속이나 하는 것이 고작이었던 우리 때 선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교문 선거 유세 첫날은 나도 아이를 따라 학교에 가서 구경을 했는데 선거운동을 도와주기로 한 친구들이 약속 시간보다도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도 설렘과 기대, 흥분이 잔뜩 묻어나오고 있었다. 어른의 시선에서는 서툴고 미약한 것들이 먼저 보였지만 아이는 분명 초등학교 5학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마침 내가 투표 당일에는 해외에 있어서 티 안 내고 조용히 마음 졸이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개표 직후 담임 선생님이 문자로 결과를 알려주셨다. 아이는 원하는대로 전교 부회장이 되었다. 당선 문자를 받은 후 나는 와이키키 해변에서 남편과 축배를 들었다. 그까짓 부회장이 뭐라고 지난 일주일 간 이리도 마음을 졸이고 있었던 걸까……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편이 말한다. “아, 이상하게 당선되고 나니 득표차가 궁금하네!”  회장 선거 기간 동안 시종일관 아이 일은 아이가 알아서 하는 거라며 나에게는 절대 도와주지 말고 아이가 리더십에 대한 성찰이나 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라고 말했지만, 막상 아이가 부회장에 당선되니 기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덩달아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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