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십니까?
08/06/18  

십여 년 만에 만난 친구와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식사 후에 친구 집으로 자리를 옮겨 차를 함께 마셨다.

 

친구는 내가 가끔 찾는 Pacific Hwy 인근의 바다가 환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집들이 바다를 향해 드문드문 있는 게이트 단지에 살고 있었다. 친구의 안내로 단지를 자동차로 한 바퀴 돌아보았다. 꽤 큰 단지였다.

 

오랜 만에 만나니까 서로 할 이야기들이 꽤 많이 밀려 있었다. 친구는 5년 전부터 은퇴를 준비해 왔으며 이제 곧 일을 그만 둘 계획이라고 했다. 아들과 딸도 전문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고 부인과의 금술도 좋아 아무런 걱정이 없는 듯 보였다.

 

헤어질 무렵 친구에게 물었다. 행복하냐고. 친구가 말했다. 행복하지 않다고. 요즈음 약간의 우울증 증세가 있다며 수면제를 먹어야 잘 수 있다고 했다.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수술로도 완벽하게 치유할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차창 밖에서 손 흔드는 친구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에 씁쓸한 마음이 되었다.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친구를 만난 이틀 후, 보이스카우트 서울연맹에서 지도자 활동을 함께 했던 홍 선생님이 사무실을 방문했다. 서울연맹 훈련 담당 훈육위원이었던 홍 선생님은 마른 체구에 호리호리한 키로 외모는 연약해 보였지만 강단 있고 산악 활동을 활발히 하는 분이었다. 그는 나에게 스카우트 스승이며 동지인 분이다. 그런 만큼 반가움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함께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어딘지 걸음걸이와 손놀림이 예전과 달랐다. 그러나 대화에 큰 문제가 없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홍 선생님은 그날 저녁 자신이 머물고 있는 딸의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그곳에서 만난 홍 선생님의 부인으로부터 홍 선생님이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약을 먹지 않으면 생활에 지장이 있지만 발병했을 때보다는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또 홍 선생님은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병을 숨기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지 않고 건강할 때처럼 생활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홍 선생님은 몸동작에 조금 어색함이 있을 뿐, 다른 모든 것은 과거 내가 알고 있던 그와 다름이 없었다. 홍 선생님에게는 지금 행복하냐고 묻지 않았다. 그의 말과 행동에서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람들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돈이 많아서 행복해 보이고, 또 어떤 사람은 건강해서 행복해 보인다. 못 배운 사람은 많이 배운 사람이 행복해 보이고, 자녀 문제로 속 썩는 사람은 자녀를 훌륭하게 키운 사람이 행복해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을 행복한 사람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행복의 기준을 늘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면서 찾으려고 한다.

 

행복과 관련해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가 있다. 벨기에의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희곡 ‘파랑새’이다. 주인공 틸틸과 미틸(한국에서는 치르치르와 미치르라고 이르는데, 이는 틸틸과 미틸의 일본어 발음을 그대로 한국어로 옮긴 때문이다) 남매가 꿈속에서 요정과 함께 추억의 나라와 미래의 나라 등으로 파랑새를 찾으러 갔지만 실패하고 결국 파랑새는 자신들의 새장 안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안에 있다. 행복은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는데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내 안에 있다.

 

그 행복을 발견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적인 문제이다. 베트남 출신 스님 틱닛한은 그의 저서 ‘좋은 사람으로 사는 법’에서 “내 안에 내재하는 폭력성과 화, 걱정과 우울, 스트레스는 괴로움을 낳는다. 이는 나를 파괴할 뿐 아니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괴로움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 행복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행복한 세상은 자신을 깊이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활 어딘가에 행복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잊고 있기 때문인 셈이다.

 

홍 선생님은 열흘의 일정으로 남미 여행을 떠났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서 일주일 정도 더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자리를 만들기로 했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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