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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지에서
08/13/18  

올여름 한반도는 111년 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닥친 사상 최악의 폭염과 열대야로 전국이 마치 거대한 찜질방을 방불케 한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주륵주륵 흐르는 폭염이 계속되며 시원한 계곡이나 푸른 바다에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무렵 우리 가족도 피서를 떠났다.

 

네 명의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어딘가를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인원수가 많다 보니 교통 수단이 너무 비싸면 부담이 되고 우리 식구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잠자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피서지에서 즐길 거리들이 만 4세부터 초등학교 5학년 아이까지 두루두루 흥미로워야 하고 안전해야 하며 주차 시설도 잘 갖추어진 장소를 물색하다 올여름 피서는 강원도 양양 남애해수욕장으로 다녀오기로 했다.

 

남애해수욕장은 듣던대로 수심이 얕고 파도가 잔잔해서 아이들 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파도가 거센 캘리포니아 해변에서는 아이들이 파도나 구경하며 모래성만 쌓곤 했었는데 이곳은 부담없이 첨벙첨벙 바닷물로 뛰어들어갈 수 있어 참 좋았다. 또 물이 맑아 스노클링을 하며 작은 물고기나 조개를 구경할 수도 있어 재미는 물론 아이들은 피서와 체험학습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피서지였다. 바닷물에 등을 대고 누우면 위로는 청명한 푸른 하늘이, 아래는 코발트색 바다가, 그야말로 온몸에 푸른 물이 들 것 같은 낙원이었다.

 

한국은 어딜 가든 참으로 아름답다. 차를 타고 조금만 교외로 나가도 눈길이 머무는 곳이면 어느 산천이든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래서 한국에 사는 동안 방방곡곡을 두루두루 여행해 봐야겠다는 욕구가 불타오른다.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물이 맑고 자원이 풍부한 동해, 드넓은 갯벌이 인상적 서해, 바다 위에 점점이 늘어 선 섬들이 천혜의 비경을 연출하는 남해까지, 저마다 다른 특색을 지닌 바다를 국토의 삼면에 두르고 있으니 이처럼 아름다운 국토를 가진 나라를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휴가철만 되면 옥에 티처럼, 눈에 가시처럼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바가지 요금이다. 해변에 설치된 파라솔뿐 아니라 직접 가져온 텐트나 파라솔을 설치하는데도 자릿세를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정찰제가 아니다보니 부르는게 값이라 같은 텐트도 저마다 다른 금액을 지불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계곡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계곡물에 발이라도 담그려면 근처의 식당이나 카페에서 음식을 주문을 해야 한다. 아예 식당 측에서 계곡에 평상이나 의자를 설치해 놓기도 하고, 음식을 주문한 손님들이 물놀이를 할 수 있도록 계곡을 막아 수영장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불법 시설물에 어이없는 바가지 상술이 판을 치지만 단속이 쉽지 않은 탓인지 해마다 같은 뉴스가 쏟아져 나와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 바가지 요금에 비해 주변 시설이 열악하고 서비스도 기대 이하이다. 미국에서도 바다나 공원에 들어가기 위해서 입장료나 주차료를 따로 지불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용료 요구 자체는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아니 이용객이 많을수록 관리를 위해 합리적인 이용 요금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시설 이용료를 받으면서도 과연 시설 관리를 하고나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주변은 지저분하고, 수용 인원을 초과해도 한참은 초과해 보일 정도로 많은 인원을 마구잡이로 받아들여 휴식을 위해 찾은 장소에서 오히려 불쾌감을 느끼기 일쑤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펼쳐지는 이런 불쾌한 경험들이 싫어서 아예 조금 더 돈이 들더라도 해외로 휴가를 떠난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안타깝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 정부에서는 국내 여행을 장려하는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지만 한국에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 많아도 휴가지에서 불편하고 불쾌한 일들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된다면 당연히 해외로 마음을 돌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을 여행할 때 작은 시골 도시의 오래된 건물들도 잘 관리되고 있는 모습에 감탄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웃 나라인 일본을 최고의 여행지로 손꼽는 것에 공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도 관광자원들의 특성을 살피고 관광객 유치를 위한 편의시설과 서비스 질만 향상시킨다면 해외의 내놓으라는 휴양지 못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더 멀리, 넓게 큰 그림을 그린다면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이 즐기고 더 많이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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