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08/27/18  

열 손가락 중 반지를 끼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 알록달록 화려한 젤네일 아트로 꾸며진 손톱으로 쉬지 않고 타닥타닥 테이블을 두드리는 모습에서 그녀의 날카로운 긴장감이 느껴진다. 맞은편에 앉은 나이 지긋한 중년 남성은 테이블에 놓인 신문을 읽으며 이따금씩 헛기침을 한다. 신문을 펴고는 있지만 연신 벽시계 쪽으로 시선이 가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그는 꽤나 초조해보인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긴장과 초조함이 드러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이곳은 면접 대기실 안이다.

 

내가 사는 지역구에서 3년 전 관광 정보 센터를 오픈했는데 외국인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외국어가 가능한 자원 봉사자들을 선발한다고 했다. 나는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다가 동네 친구가 정보를 주어 지원을 결심했다. 일본어, 중국어 지원자 미달로 면접 날짜가 한 번 연기되었지만 하필 영어 지원자는 너무 많아 부담스러울 정도라고 했다.

 

면접 날 안내해 준 장소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나는 이런 식의 공개 면접이라는 것을 본 기억은 전혀 없다. 구인 광고를 보고 찾아가거나 지인의 추천으로 면접을 본적은 꽤 있었지만 대부분 1대1 면접이었기 때문에 이런 풍경은 굉장히 낯설었다. 다양한 성별과 연령의 사람들이 외모만큼은 흠씬 신경써서 나온 걸 보니 마치 동문회장을 찾은 사람들 같아보이기도했다. 관광 봉사자라면 뭔가 활동적인 이미지가 좋겠다고 생각하여 용모 단정을 기본으로 남방에 면바지, 스니커즈를 신고 갔는데 다른 사람들은 투피스, 블링블링 악세서리에 명품백까지 뭔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차림이었다.

 

한 시간의 대기 끝에 대기번호 17번이었던 내 이름이 호명되고 다른 세 명과 함께 면접실로 들어섰다. 함께 면접에 들어간 사람들 중 나이는 내가 제일 어린듯 했다. 외국계 회사에서 정년하신 분, 독일과 미국에서 20년 가까이 거주하셨다는 분, 미국에서 살다가 돌아와 영어 입시 강사로 15년 가량 근무하셨다는 분과 함께 나란히 앉았다. 맞은편 테이블에 앉은 여섯 명의 면접관은 길어진 면접으로 다소 피로해보였지만 미소를 보이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여주기 도하며 친절을 표현했다.  

 

첫 질문은 한국어로 자기 소개. 나는 첫 번째 의자에 앉은 탓에 매번 처음으로 답해야하는 상황. 대답할 시간을 벌지 못하는 아쉬움이 컸지만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일반 대화라고 생각하고 편안히 대답했다. 이미 이력서는 제출했기 때문에 면접관에게는 내 인성을 보여주는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세 명의 지원자들은 이력서에 명시된 내용들을 토대로 본인의 능력을 부각시키는데 힘쓰는듯 했다. 하나라도 빠질까 싶어 열심히 본인의 이력을 설명하는 모습이 꽤 절실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위기는 영어 인터뷰와 함께 시작되었다. 나에게는 관광 정보 센터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 팀워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직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일하면서 힘들었던 적이 있었는가 등의 질문을 했고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성실히 답변을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다른 세 명은 화려한 영어 이력과 달리 막상 영어로 대답을 하게 되자 극심한 버퍼링이 찾아온 듯했다. 세 명 모두 첫 번째 질문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영어 인터뷰 종료를 맞게 된 것이다. 그들의 화려한 이력과는 상반된 자신없는 모습에 나도 놀랄 정도였다. 역시 주입식 영어 교육의 폐단인걸까…… 어째서 그들은 제대로 말 한마디 해 보지 못한걸까?

 

어쨌든 면접 다음 날이었던 어제, 면접 결과 만장일치로 합격이라고 연락이 왔다. 어디 대기업에 취직한 것도 아닌데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아직 무슨 일을 어떻게 하게 될지는 잘 모르지만 나름 재능 기부를 할 수 있게 되어서 신이 난다. 또 앞으로 칼럼에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풍부해질 것만 같아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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