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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상담
09/17/18  

학교에서 2학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학부모 상담 기간이 시작되었다. 1학기 상담과 달리 2학기 때는 꼭 필요한 사람만 상담 신청을 하라고 안내문이 왔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아이들이 학교에서 잘 생활하고 있는지 담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전화 상담을 신청했다. 전화 상담을 신청하면 선생님과 시간을 조율하여 정해진 시간에 학부모가 전화를 거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첫째와 2학년인 둘째의 담임 선생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칭찬일색이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온지 1년만에 한국어 실력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성장하였다며 가정에서 따로 지도하는 것이 있는지 궁금해했다. 매너가 좋고 배려심이 남다르며 교우관계도 원만하다고 말씀해 주시니 크게 안심이 되었다. 둘째인 딸의 경우 단점이라고 굳이 꼽은 것이 아이가 인내심이 너무 강해 마음속으로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약 15분가량의 상담 내내 하하호호 웃으며 연실 감사합니다를 해대며 상담은 훈훈하게 끝이났다.

 

그런데 복병은 이제 1학년인 셋째였다. 셋째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학년 부장 선생님으로 워낙 깐깐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분이셨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 햇병아리들과 어울리지 않는 카리스마와 위엄이 가끔은 쌀쌀맞고 매정한 선생님처럼 느껴지곤 했던 것이다. 입술을 한쪽으로 모으고 삐쭉하는 표정을 지을 때마다 선생님은 곧 이어 뭔가 언짢은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다. 얼마 전부터는 “반성” 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하셨는데 뭔가 잘못을 한 아이가 교실 앞으로 나와 “저는 이런이런 잘못을 하였습니다.”라고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얼마 전 일기장을 안 갖고 온 친구가 앞에 나와 “반성”을 했는데 아이는 부끄러워 울음이 터지고 반 친구들도 덩달아 겁에 질렸다는 이야기를 우리 아이에게 전해 듣기도 했다.

 

역시나 선생님은 전화 상담이 시작되자마자 몰아치기 시작했고 전화 통화 중반을 넘어가며 내 마음은 해일을 만난 돛단배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선생님의 요지는 우리 아이가 외국에서 와서 급우들보다 언어가 많이 부족하니 학습적으로 더 격차가 생기기 전에 엄마가 더 신경을 써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고 아이의 현 위치를 숨김 없이 현실적으로 꼬집어준 꼭 필요한 고마운 직언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빙자해 마치 나를 (부모도 아니고 꼭 꼬집어 엄마) 평가하고 비난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몇 번이나 반복하여 더 신경 써 줘라, 챙겨 줘라, 마냥 놀릴 때는 아니다, 요즘 누가 학교 공부만 하나, 나중에 격차가 생기면 어쩔 거냐…… 결국 마지막으로 “내가 먼저 아이를 키워 본 사람으로서 하는 이야기예요. 아이들이 그렇게 혼자 알아서 잘 할 수가 없더라구요. 아무리 바쁘셔도 아이를 더 챙기세요.” 라는데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똑같은 말도 기분 나쁘게 하는 능력이 있으신 듯 말투가 크게 거슬렸지만 크게 반박할 구석 없는 내용들이었다. 그저 미국, 한국 학부모 상담을 통틀어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라 상담을 마치고 괜히 힘이 쭉 빠졌다. 아니 중학생도 아니고 이제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인데 지금 놀 때가 아니면 언제 놀 때인 걸까? 4학년 때 한글을 시작한 형도 있는데 그렇게 조바심 낼 일인가? 숙제도 준비물도 스스로 잘 챙겨 대견한 녀석인데 무엇을 더 챙기라는 걸까? 내가 선생님께 밉보이기라도 한 걸까? 본인은 외국어 공부 1년 만에 이 정도 성과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걸까?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들면서 씁쓸하다가 화가 났다가를 반복했다.

 

사실 우리 아이는 지난 1년간 정말 놀라울 정도로 눈부시게 성장했다. ㄱㄴㄷ도 모른채 한국에 왔던 아이가 한글 동화책을 읽고 받아쓰기 시험에서 100점을 받아오는 것만으로도 나는 박수쳐 주고 꼭 안아주고 싶다. 아직 어설프긴해도 나름 많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기에 아이가 철자가 틀린 삐뚤빼뚤한 글씨로 일기를 쓰고 말하는 중간 조사가 틀려도 나는 지금 당장 조급해 하고 불안해 하고 싶지 않다. 학부모 상담을 통해 담임 선생님과 나의 생각이 다름을 확인하여 다소 안타깝지만 나는 지금보다 더 아이를 채찍질할 생각이 없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 동안 엄마인 나도 같이 흔들리고 주저앉고 좌절하는 일이 생기겠지만 벌써부터 그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고 싶지는 않다.

 

학부모 상담 후 선생님에 대한 소심한 복수로 아이가 받아쓰기 시험에서 빵점을 받았으면 했는데 백점을 받아왔다. 아이가 기특하긴한데 선생님이 원하는 대로 된 것 같아서 뭔가 찜찜했다. 엄마가 갑자기 신경 써 준 것 같은 모양새는 싫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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