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인들, 더 이상 뒷방 노인네가 아니다
09/24/18  

버스 정류소 나무 밑에 나무의자가 빙둘러 있었다. 나이 지긋한 노인 셋이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숨을 헐떡이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 왔다. 앉아 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방금 도착한 이에게 물었다.

 

“웃도리 바꿨어?”

질문을 받은 사람은 손에 들고 있던 묵주를 내밀면서 말했다.

 “응? 이 묵주?”

 “아니 웃도리.”

 “웃도리가 하난가. 이거 입었다 저거 입었다 하는 거지.”

 “아니 지난번에 샀다가 한 번 입어보고 맘에 안 들어 바꾼다고 했던 웃도리 바꿨냐고?”

 “응, 그 다음 날 바꿨지.”

 

그들은 귀가 안 들리는지 큰 소리로 얘기하고 있었다. 고국에 와있음을 실감했다. 만일 미국의 어느 시골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노인들이 이런 대화를 하고 있었다면 그 내용을 알아들었을까?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로 자리를 옮겨서도 그들의 대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싶지 않아 그들과 떨어져 앉았지만 워낙 크게 얘기하는지라 꼼짝 못하고 들을 수밖에 없었다.

 

“김정은이가 잘하고 있어. 문 대통령이 젊은 애게게 너무 굽실 거리는 거 아냐?”

“임기 내에 뭔가를 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어쩔 수 없지. 임기가 정해지지 않은 사람이야 얼마든지 끌고 갈 수 있으니까.”

“트럼프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래도 끌려가지는 않을 거야. 트럼프는.”

“아무튼 대단하지 않아. 백두산에 올라 간 거 아냐.”

“뭔가 다르긴 달라. 김정은이가 유학파 아닌가.”

그들은 주위에 아랑곳 하지 않고 큰소리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로 옮겨 탄 후 도봉산역에서 내렸다. 역에서 나오기 전에 한 간이 식당에서 오뎅 한 꼬치와 김밥 한 줄 사서 뜨거운 오뎅 국물을 마셔가며 그 자리에서 먹었다.

 

역사를 나오니 각종 상점들이 빽빽히 들어차 골목이 형성된 길이 나왔다. 등산복, 둥산용품을 파는 상점부터 각가지 음식을 파는 식당들 사이를 지났다. 골목을 빠져 나오자 버스가 다니는 큰길이 나왔다.

 

혼자 온 사람, 둘이 온 사람, 서너 명이 온 사람 모두 열심히 걷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내려오는 사람 올라가는 사람-남녀 할 것 없이- 모두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었다.

 

길가의 벤치들에는 장기 두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었고, 주변에 화투판을 벌여 놓고 웃고 떠드는 무리들도 있었다. 노인들이 집안에 틀여 박혀 있지 않고 밖으로 나와 자기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산길에 접어들어서도 모양은 마찬가지였다. 오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노인들이었고 남녀로 나뉘어 그들의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지난해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712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4.2%에 달했다. 유엔 등 국제기구는 노인 비중이 7% 이상일 경우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구분한다. 한국은 2000년 노인 비중이 7.3%에 이르며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뒤 17년 만에 고령사회로 들어섰다. 이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속도이다. 일본의 경우, 1970년 7%에서 1994년 14%로 고령 인구 비중이 늘어나는 데 24년이 걸렸다. 한국은 오는 2026년이면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 영국 등이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기간이 100년 안팎으로 전망되는 데 견줘, 한국은 26년에 불과한 셈이다.

 

‘뒷방 늙은이’라는 말이 있다. 집안에서 실권이 없는 노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집안의 실권을 자식들이 가지고 있다 보니 당연히 자식들 눈치를 살피며 살아야 했다. 설사 부모의 현실을 배려해주는 사려 깊은 자식과 함께 산다 해도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정년 연장이나 노인 일자리 창출과 같은 말도 이런 사회 현상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실제로 일하는 노인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요즈음 한국의 노인들은 설사 일자리가 없다 하더라도 더 이상 ‘뒷방 늙은이’가 되길 거부한다. 아니 오히려 손자를 돌보거나 자식들의 가사를 돕는 등 당당한 가족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또 등산, 수영 등 취미활동도 적극적으로 영위한다.

 

‘늙은이가 뭘 안다고’ 하는 생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한국의 노인들은 확고한 소신으로 남은 삶을 멋지게 살아가고 있었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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