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1.5세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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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10/01/18  

한국에 살아보니 한가위쯤이 가장 살기 좋은 것 같다. 너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으며 미세먼지 없는 하늘은 높고 청명하다. 이 좋은 날씨를 만끽하고자 야외 활동들이 연이어지고 얼굴 한 번 보자며 반가운 연락을 해 오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에어컨에 의지하지 않고 창문만 살짝 열어두어도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간지럽히니 집안일을 하기에도 좋고 등하교하는 아이들도 상쾌하고 퇴근길 남편의 발걸음도 훨씬 가벼워졌다. 정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에 백 번 공감하는 시기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점은 추석 연휴를 맞아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부쩍 늘어났다는 것이다. 물론 성인이 되고 나니 어릴 때와 달리 명절이면 내가 신경쓰고 챙겨야 할 것들도 많아지지만 그래도 뭔가 설레고 신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늘상 먹는 끼니인데도 새삼스럽게 명절 상차림을 벌이고 모두 둘러 앉아 명절 분위기라도 내는 듯 이제 성인이 된 자녀들은 어릴 적 부모님을 추억해 내고 어머니, 아버지는 수백 번도 더 들었던 옛날 에피소드들을 재생해 낸다. 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다시 귀를 기울이고 어느새 집안은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해진다. 행복이 뭐 별건가…… 이렇게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지 싶다. 저녁을 배불리 먹었는데도 과일도 깍고 커피도 끓이고 이야기와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가족은 한 끼의 식사, 명절, 단순 이벤트, 하하호호 즐거운 하루의 기억만으로 정의하기에는 그 속내가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다. 겉으로 보기에 평범하고 평온한 가족일지라도 막상 그 안을 열고 들여다보면 완벽한 가족은 절대 없는것 처럼 말이다. 가족의 넘치는 관심이 때로는 부담이 되고 끊임없이 내 삶에 끼어드는 것이 불편하고 가족에 대한 책임이 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서로의 치부와 불완전함을 평생 적나라하게 보여오는 동안 끊임없이 서로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주는 일도 있다. 누구에게나 가족이 지긋지긋한 시절이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얼마전 “어느 가족”이라는 혈연관계가 없는 완전 남남들이 공간을 공유하고 자신의 것을 양보하거나 나누며 가족처럼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이야기의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들은 모두 비혈연관계이고 노인, 아동, 실업자, 비정규 노동자 등 사회의 최약체로서 가난한 삶 속에서 서로에게 그 어떤 기대도 속박도 하지 않으며 살아간다. 좀도둑질을 하고 비윤리적인 직업을 갖고 있어도 비난하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참견하거나 억압하지 않는다. 그 가운데 평화가 유지되고 소소한 행복도 생겨나는 것을 보며 가족이란 이름으로 학대하고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것보다 오히려 이상적인 것처럼 보여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결국 결정적인 상황이 왔을 때 이들은 서로를 지켜주지 못하며 모호한 법 역시 이들을 해체하게 이른다. 짙은 여운을 남기는 이 영화는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며 보고 난 뒤에도 한참 동안 마음 한 구석을 먹먹하게 했다.

 

그렇다. 가끔은 가족이라 더 어렵고 더 불편하며 더 힘들기도 하다. 생판 남이라면 아무 것도 아닌 일도 내 가족이라면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고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힘든 탓이다. 그렇다보니 많은 이들이 “가족은 애증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말한다. 유교사상이 바탕인 한국의 가족 형태는 나이가 들면서 서로에게 더 깊은 부담을 주게 된다. 가족을 위해 내 삶을 희생하고 그 희생은 결국 어떤 대가를 기대할 수밖에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맹목적인 사랑은 가족을 눈멀게 하고 넘치는 관심과 기대는 실망과 원망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시댁 식구들을 초대해 저녁 식사를 하고나니 밤 늦은 시간 설거지가 산더미같았다. 남편이 먼저 설거지 일부를 끝냈지만 남은 설거지와 정리할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평소같으면 힘들어도 바로 정리를 끝냈을 텐데 며칠 전부터 허리 통증이 심상치 않았던 터라 지저분한 부엌을 뒤로하고 두눈 질끈 감고 누워버렸다. 그 다음날 아침, 달그락 소리에 눈이 떴는데 잠시 우리집을 방문하신 친정 아버지가 설거지 더미를 해결하고 계셨다.

 

그래, 나는 삶의 힘든 마디마디를 지나올 때마다 가족으로부터 끊임없이 힘을 얻었다. 그리고 세상을 사는 동안 거창한 소원 대신 그저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컸다. 지금 이만큼이면 충분하다. 딸 대신 설거지하는 아버지가 계신 것만으로 나는 이미 다 가졌고 다 받았다. 올 한가위도 가족이 있어서 더할나위없이 풍요롭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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