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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10/15/18  

내가 만난 사람이 분명 친절한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왠지 썩 기분이 좋지 않은 찜찜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혹시 상대방에 대해 뭘 오해한 것이 아닌가 돌이켜 보아도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면 더 난감해지기도 한다.

 

상대방이 친절해 보이는데도 뭔가 찜찜한, 아니 오히려 불쾌한 감정이 드는 이유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먼저, 과잉 친절이다.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친 것은 오히려 부족함만 못하다. 상대방이 불친절하다면야 불쾌함은 당연하고 한바탕 입씨름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텐데 과잉 친절 때문에 불편해지면 당한 사람만 끙끙 앓을 수밖에 없다. 어찌 웃는 얼굴에 침을 뱉겠는가.

 

다음은 진심이 들어있지 않은 친절이다. 친절하긴 한 것 같은데 가만 들여다보면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말과 행동을 겪고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지극히 사무적인 친절. 마치 로봇을 대하는 것 같아 사람 사이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들지 않는다. 마지막으로는 오해이다. 친절을 베푼 사람은 말과 행동에 진심을 담았는데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 마음을 읽지 못해 서운하게, 불쾌하게 여기는 경우이다.

 

얼마 전, 한 달 일정으로 한국에 다녀왔다. 한국 여정은 언제나 계획 단계부터 마음 설렌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 즐겨 먹던 먹거리, 한국만의 자연과 날씨, 무엇하나 그립지 않은 것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고된 비행도 넉넉히 참을 만하고, 황사며 태풍이며 폭우도 정겹다. 그런 한국 여행에서 정작 힘든 일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가족이나 친지, 친구들처럼 이미 익숙한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과의 관계는 친절이란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번 여행에서도 낯선 사람들로부터 친절 때문에 울적해 해야 했다.

 

한 관공서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본청을 방문했어야 하는데, 그런 사실을 모르고 지청을 찾았다. 지청의 한 공무원에게 본청 가는 길을 물었더니 그는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본청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가는 길을 물으려 했지만 그가 이미 등을 보이고 난 후였다. 약간 불쾌했지만 뒤돌아선 그를 다시 불러 가는 길을 묻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현관에 있던 안내 직원을 찾아가 물었다. 그녀 아주 상냥하고 친절한 어투로 전철을 타면 한 시간 반 정도 걸리고 택시를 타면 40~50분 만에 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살짝 웃음기 있는 얼굴로.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그녀는 그 말만 남기고 창구 직원처럼 뒤돌아섰다.

 

한국을 떠나 산 지 오래된 사람들이 모처럼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와 하는 말은 하나같이 자신이 한국에 살 때와 너무 많이 달라져 어디가 어딘지 구별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나라고 해서 다를 리 없다. 언제부턴가 낯선 땅이 된 한국, 그래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뭔가 물을 것도 점점 많아지고, 그런 만큼 한국을 방문할 때면 사람들의 친절은 늘 절실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시청역 12번 출구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약속 시간보다 1시간 30분이나 일찍 도착해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마침 북적거리는 서울 거리를 지나면서 커피 한 잔 생각이 간절하기도 한 참이었다. 가까운 곳에 커피전문점이 있었다.

 

매장의 직원은 젊고 예뻤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4,100원이란다. 4,000원을 지불하고 100원짜리 동전을 찾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는데 직원이 재촉하듯이 말했다. 4천 백 원이요! 손이 채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기도 전이었다. 뒤에 다른 손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유를 넣어 달라니까 그럴 수 없단다. 상냥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그러면서 물었다. "설탕 드릴까요?" "예."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몇 개냐고 묻지도 않고 하나를 내밀었다. 마셔본 커피 중 가장 맛없는 커피를 마시며 지루한 시간을 이겨낼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15년, 전 세계 호텔예약사이트인 호텔스닷컴(Hotels.com)이 발표한 ‘2015년 중국 해외여행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해외여행을 다녀온 후 가장 친절한 나라로 한국(14%)을 꼽았다. 태국(9%)과 일본(7%)이 한국 뒤를 이었다. 한국이 가장 친절한 나라에 이름을 올렸다니 기분 좋은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꼬리를 무는 생각은 ‘그들은 과연 어떤 친절을 경험했을까?’이다. 그들이 경험한 친절이 진심이 담기지 않은, 혹은 과잉 친절이 아니었기를 바란다. 그런 친절을 경험하고도 문화와 관습이 다른 이유 때문에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길 바란다.

 

내가 한국에서 경험했던 불쾌함이 한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친절하게 느낄 수 있는 말과 행동이었음에도, 오랜 세월 타국에서 살다가 한국을 방문한 탓에 갖게 된 오해였기를 바란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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