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칼라 범죄 (White Collar Crime)
10/15/18  

주위에 형법을 취급하는 변호사 동료들이나 검사로 재직한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 가끔씩 끔직한 흉악범 관련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낼 때면 마치 한편의 드라마나 소설 속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빠져들어 경청하게 된다. 가해자의 해악성을 쉽게 인정할 수 있는 살인, 강도 등 눈에 띄는 범죄는 일반화된 생활방식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에 위법과 합법의 구별이 어렵거나 형사법으로 다뤄지지 않는 범죄 행위들은 우리 주위에서 항상 일어남에도 불고하고 상대적으로 덜 의식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 보면 덜 흥미로운 주제이고 어쩌면 모두가 너무 익숙한 이 사회의 일부분이다. 화이트칼라 범죄가 그렇다.

 

사실 법률용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화이트칼라 범죄는 시사 상식, 사전 상의 의미로 사회적 각 방면, 특히 중산층이나 상류층 부류의 직업 계층에서, 지위를 이용하여 직무 과정 중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를 뜻한다. 칼라가 달린 하얀색 와이셔츠 위로 정장을 갖춰 입은 사무직 종사자들의 부정과 비리 행위를 상징적으로 가리키며 유래된 표현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특정 계층 사람들만의 범죄는 아니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 시 되는 사회로 변천을 거듭하면서 단순히 생계수단을 목적으로 저지르는 범죄 행위가 아니라 경쟁사회에서 보다 손쉽게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타인이나 다수의 손실이나 폐해를 간과하는 태도가 빚어낸 도덕적 결함의 결과물이다.

 

오늘날 수많은 종류의 화이트칼라 범죄가 발생하고 있으며, 수법과 종류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횡령, 배임, 공직부패, 컴퓨터 범죄, 신원 도용, 탈세, 내부자 거래, 주가조작, 자금세탁, 저작권 침해, 뇌물 등이 이에 속한다. 물론 상당한 비율의 상법소송이 화이트칼라 범죄와 관련이 있기에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기도 하지만, 필자 자신도 사이버 침해 범죄, 신용카드나 신원 도용 등으로 몇 차례 직접적인 피해자가 된 경험이 있다.

 

민간인이나 소규모 집단이 저지르는 범죄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이나 업계에서 관행처럼 반복되는 화이트칼라 범죄들도 있으며, 불특정다수가 그로 인해 겪게 되는 타격은 상대적으로 훨씬 더 크다. 가격 규칙의 위반, 반-트러스트법 위반, 환경 법 위반 등이 이에 해당되며 과장 광고 역시 예외는 아니다.

 

화이트칼라 범죄의 경우 명예나 권력, 혹은 물질적인 사리사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은밀하고 계획적으로 범죄를 행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직접적인 폭력이나 상해가 수반되지 않다 보니 형사문제로 다루기 곤란한 부분이 많다. 또한 관리자나 기업 종사자, 행정가 등의 경우 고도의 지능과 지위, 또는 조직력을 이용하여 부당이득을 취하거나 불법행위를 저지르기 때문에 법률 위반을 입증하기도 어려우며 증거를 인멸하기도 용이하여 기소 자체가 되지 않는 경우 역시 많다. 가해자가 직접 눈으로 바로 피해자에게 가는 파격을 보지 못하기에 죄의식을 잘 느끼지 못하곤 한다. 실제로 화이트칼라 범죄와 관련된 소송들을 접하다 보면, 가해자들이 행정규율 선에서 처벌을 받거나 민사적 조치로 책임을 지게 하면서 사건들이 별일 아닌 것처럼 무마되는 경우가 많다.

 

죗값을 치르는 방법은 다양하다. 반환, 배상, 복구, 벌금을 비롯하여, 형사 처분의 경우 형량에 따라 보호 관찰, 사회봉사명령, 혹은 징역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의 경우 개인정보 유출 예방이나 기업 내부 통제와 회계감시의 정확성 보증 차원에서 특수 분야에 따라 위반사실만으로 곧바로 무과실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정책들이 생겼으며, 중국의 경우 화이트칼라 범죄로 인한 사형이 집행될 수도 있다.

이지연 변호사 (Jeeny J. Lee, Esq.)JL Bridge Legal Consulting 대표변호사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