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어때서
10/29/18  

다들 미친 짓이라고 했다. 친구들도 사돈 부부도 극구 말렸다. 선후배들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냐며 정신이 잘못되지 않았나 의심하는 눈치였다. 딸과 사위는 아버지 연세를 생각하라고 했다. 그냥 산길을 걷기도 힘든데 줄 하나에 매달려서 바위를 오르내릴 거냐며 떠나는 시각까지 만류했다. “아빠는 다른 분들이 하는 걸 보고 안전하다고 생각되면 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 보이스카우트 지도자 선배 두 분을 따라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한국보이스카우트 운동을 시작했던 독립운동가이며 애국지사인 조철호 선생께 참배하는 것으로 한국에서의 여정을 시작했다.

 

선배들은 예전에 함께 활동했던 지도자들 몇 사람과 매월 첫 번째 월요일 모인다며 시간이 있냐고 물었다. 모두 보고 싶은 분들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했다.

 

젊은 시절, 야영장에서, 산과 들에서, 바다에서 함께 했던 선배들은 여전히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었다. 70대 중반을 넘어선 분들, 80줄에 접어든 분들 여전히 젊은 시절 그대로 말하고 행동했다. 한 선배가 내가 하지도 않은 행동을 했다며 나의 말도 안 되는 무용담을 꺼내자 다른 한 분도 지지 않고 또 다른 나의 옛날 모습을 전하고 있었다. 전혀 기억에 없는 그 옛날 일들을 토막토막 떠올리며 우리는 웃고 떠들었다. 경주 캠퍼리, 지리산, 덕유산, 대만 잼버리, 호주 세계 잼버리, 그리고 한국 세계 잼버리. 이야기는 그치지 않고 이어졌다.

 

그때 한 분이 말했다. 내가 뉴질랜드에서 했던 기행을 얘기했던 선배다. 날 잡아서 바위 타러 가자고. 기다렸다는 듯이 또 한 분이 그러자고 했다. 내게도 가자고 하면서 대전현충원에 함께 갔던 다른 선배에게도 당연히 같이 가야한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현충원 가는 길에 함께 했던 네 사람이 암벽 등반하기로 했다.

 

선배들의 기개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나무에 단단히 묶어 놓은 줄에 몸을 걸고 하강을 준비하는 선배를 누가 80대 초반의 노인이라고 하겠는가? 줄과 줄을 잇는 이음새 고리 하나 하나를 ‘체크 하나, 체크 둘, 체크 셋,....’ 점검한다. 바위 아래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한 분이 줄을 잡고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최고 연장자인 선배가 줄에 의지한 몸을 움직여 바위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른손의 줄을 조금씩 풀어주면서 내려간다. 만일 멈추고 싶으면 오른 손에 잡은 줄을 꼭 잡고 있으면 그 자리에 머물 수 있다. 왼손에 잡은 줄은 오른 손에서 놓아주는 만큼 줄을 움직여 잡으면 된다. 그리고 두 발을 바위에 밀착시킨 채 무릎을 펴고 오른 손에서 줄을 놓아 주는 것에 맞춰 발걸음을 떼면 된다. 멋지게 내려가던 선배가 갑자기 중심을 잃고 왼쪽으로 쏠리며 바위에서 떨어져 허공으로 뜨더니 바위에 부딪혔다. 그 순간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머리가 부딪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래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기다리고 있던 선배가 급하게 왼쪽으로 달려가며 줄을 잡아 당겼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닌 듯 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전체를 진행하던 선배가 침착하게 다음 행동을 지시했다. 무사히 땅에 발을 디뎠지만 그의 오른 손등에는 피가 범벅이 되었고, 장갑을 끼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처가 제법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뼈에는 이상이 없는 듯 보였다.

 

나머지 두 분도 한 사람, 한 사람 차례대로 하강을 했고, 마지막으로 나도 무사히 마쳤다. 그때 처음에 시도하며 손에 찰과상을 입었던 선배, 가장 연장자인 선배가 다시 한 번 더 하겠다고 했다. 오마이갓, 나는 하지 말라고 했다. 큰 소리로 말했다. 그만 하시라고. 다른 한 분도 다음에 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 선배는 자신 있다고 했다. “내 생전 처음 했는데 아까는 중심을 잃어서 실수를 했는데 이번에는 자신 있다”고 했다.

 

나무에 묶었던 줄을 풀고 있던 선배는 다시 줄을 묶었다. 다른 선배는 아래로 내려갔다. 선배는 피가 나는 손에 다시 장갑을 꼈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점검을 하고 다시 바위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선배는 줄 하나에 의지해 자신 있게 줄을 당기고 놓으면서 발을 움직여 무사히 하강에 성공했다.

 

우리 모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여든세 살에 처음 해본 일이다. 처음 시도에 약간의 부상을 입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또 도전했다. 만일 재도전하지 않고 그만 두었다면 후회했을 거다. 다른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하겠다고 외쳤기에 가능했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녁노을 좀 봐요” 지는 해가 물들인 하늘이 아름다웠다.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광어와 방어 큰 놈으로 한 마리씩 사서 회를 떠 달라 했다. 요즈음 한 철이라는 작은 고기 몇 마리를 덤으로 얹어 주었다. 이층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또 다시 시작한다. 묵은 이야기들, 이제 다음에 만날 때는 오늘의 이야기도 옛이야기가 되리라.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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