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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고양이로다
04/23/18  

지난 겨울이 유난히 추웠던 것인지 내가 추위를 타는 나이가 된 것인지 재킷을 바짝 여미고 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봄이다몇 주째 봄 타령을 하고 있지만 정직한 몸이 벌써 알아채고 나른한 기지개를 편다봄 햇살에 주체할 수 없는 춘곤증이 밀려 오고 움츠렸던 몸이 나른해지면 햇살이 잘 들어오는 창가에 몸을 축 늘어뜨리고 일광욕을 즐기는 고양이의 모습이 떠오른다봄 아지랑이는 꼭 고양이의 낮은 가르릉 거림과 닮았고 살금살금 찾아오는 봄은 마치 고양이의 발걸음을 닮았다이 세상에 고양이만큼 봄과 잘 어울리는 동물이 또 있을까?

 

초등학교 5학년 때 하얀 털에 분홍 코를 가진 새끼 고양이를 키웠던 기억이 너무 달콤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늘 고양이였다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처럼 주인을 잘 따르고 충성심이 강한 동물을 좋아하지만 나는 웬일인지 주인마저 본체만체하는 고양이의 주제 넘은 도도함과 고고함에 더 마음이 끌리곤 했다.

 

내 기억 속에 고양이는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늘 빛이 잘 들어오는 안방 침대 한복판에 사자처럼 몸을 늘어뜨리고 누워서는 고개를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다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보곤 했었다어린 마음에 함께 놀고 싶어서 이리 찌르고 저리 찌르고 장난을 걸어봐도 만사가 귀찮다는 듯이 몸을 일으키고는 어슬렁 어슬렁 나를 피해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그런 새침함이 밉지 않고 더 사랑스러웠던 이유도 어쩌면 고양이가 봄을 닮아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아담하고 예쁜 내 집을 갖게 되면 하얀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는 것이 나의 오랜 소망이었는데 올망졸망 네 명의 아이들 육아에 아직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아마도 내 아이들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지는 그날 봄 아지랑이처럼 간드러지는 털을 가진 고양이의 일광욕을 실제로 지켜볼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꿈꿔 본다.

 

따뜻한 햇살에 온 몸을 맡기고 눈을 감은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그들이 꾸는 꿈마저도 포근할 것만 같고 괜히 그 따스함에 손을 내밀고 싶어진다그리고 그 나른한 여유가 부럽다나도 잠시 컴퓨터와 스마트폰에서 떨어져 볕이 잘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느긋하게 책을 읽거나 사색을 즐기고 싶다누가 나를 쫓아오는 것도 아니고 서두른다고 상을 받는것도 아닌데하루에 24시간이나 주어졌는데 나는 늘 왜 이리 분주한 것인지……  30분만이라도 봄날의 고양이처럼 나른하고 싶어라.

 

고양이와 봄이 묘하게 닮아있음을 공감하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닌 모양이다시인 이장희님의 간결하지만 선명한 봄은 고양이로다에서 우리는 봄과 고양이의 특성이 묘하게 닮아있다 못해 하나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이 시를 마지막으로 지치지 않는 나의 봄 타령을 마무리할까 한다.

 

봄은 고양이로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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