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진
04/23/18  

며칠 전 우연히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던  4-5년 전의 내 사진을 발견하였다어느 식당에서 둘째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친정 아버지가 포착한 사진이었는데 분명 그 당시엔 뚱뚱하게 나왔다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삭제할까 말까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사진은 운 좋게 삭제되지 않고 살아 남았는데 지금 다시 보니 퍽 마음에 든다통통한 볼살도 나름 어려보이는 것 같고 피부톤도 훨씬 밝고 화사해 보인다.  불과 4-5년만에 훌쩍 나이들어버린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지만 과거의 풋풋한 모습을 보니 뭔가 감회가 새롭다.

 

이래서 나는 옛 사진 보는 것을 좋아한다어릴 때부터 유난히 좋아해서 집에 친구들이 놀러오면 부연 설명을 곁들여 앨범을 차례차례 보여주곤 했다이제와 생각해보니 친구들이 우리 가족 앨범이나 나의 유아기 사진들을 보며 나만큼 재미있었을 리가 없지만 말이다나는 수차례 반복해서 사진 한 장 한 장 부연설명을 했던 덕분에 지금도 앨범 속 대부분의 사진에 대해서 뭔가 할 말이 남아 있다지금까지 수백 번도 넘게 펼쳐 본 앨범은 이미 페이지가 너덜너덜해졌지만 뽀얀 먼지 후후 불며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소중한 기억들이 하나둘 깨어난다

 

그러고보면 사람들은 꼭 잘 찍은 그럴듯한 작품 사진들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모델의 표정이 어색하고 사진 구도도 어설프고 심지어 모델이 움직였는지 초점이 선명하지 않아도 추억을 돌이킬 수 있는 옛 사진들은 우리의 마음을 충분히 설레게 한다요즘은 디지털 기기로 사진을 찍고인화하기 보다는 컴퓨터나 핸드폰 속에 저장하여 사진을 보관하기 때문에 어쩌다가 옛날 앨범 속 사진들이나 필름 뭉텅이들을 발견하면 익숙한 듯하면서도 조금 낯선 기분이 든다언제 찍었는지 누가 찍어주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사진부터그 당시 생각까지 또렷하게 기억나는 사진들잊고 있었던 기억과 추억들을 불러일으키는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

 

우리 생일 때마다 생일상에 등장하던 롤케이크장발에 나팔바지를 입은 청년의 아버지머리 숱이 풍성하고 양볼이 통통했던 새댁 시절의 어머니이종사촌 언니에게 물려 받은 분홍 바지를 입었던 나의 유치원 소풍날…… 한 장 한 장 사진들을 볼 때마다 그리움을 동반한 궁금증도 하나씩 피어난다나의 여섯 살 생일상에서 오빠는 왜 토라진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엄마한테 혼이 난 것일까소풍날 친구들과 줄지어 율동을 하던 나는 왜 옆에 친구를 흘겨 보고 있었을까짓궂은 남자 아이가 약을 올리기라도 했던 걸까?  

 

이렇 듯 사진이란 삶의 어떤 한 순간을 작은 비밀과 함께 프레임 속에 영원히 담아 둔다누군가 그 사진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때 그 작은 비밀이 풀리기도 하고 더 많은 궁금증이 생겨나기도 한다그저 눈으로 보이는 옛날 어느 한 순간일 뿐인데 그 순간의 내 느낌과 생각,그 날의 공기와 향기까지 함께 떠오르는 일도 많다.

 

특히 앨범 속 부모님의 빛바랜 옛 사진들은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들여다보게 된다부모님에게도 눈부시게 푸른 청춘과 뜨겁던 젊은 날이 있는게 당연한 일인데도 그냥 처음부터 나의 어머니고 아버지였던 것처럼 오래된 사진들이 낯설기만 하다지금의 나보다 더 젊은 어머니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불현듯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가 그들의 지난날을 훔쳐보고 싶어진다그들도 나처럼 때로는 부모가 되는 길이 고되고 험난했을까좌절하고 주저앉고 싶었을 때는 어떻게 이겨냈을까한 번도 들어본 적 없고 또 옛날에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던 부모님의 젊은날의 이야기가 몹시 궁금해진다.

 

내 아이들도 어른이 된 이후에는 나처럼 어릴 적 대부분의 일들을 잊어버리고 사진으로나마 옛 추억을 소환해 낼 것이다다섯 살쯤 되었던 내가 땀에 젖은 축축한 아버지 등에 매달려 산에 오르던 그 순간을 우연히 기억하는 것처럼 아이들이 기억하게 될 순간이 무엇이 될지 모르기에 그저 아이가 기억하는 순간에 운좋게 곁에 있던 존재가 되려 노력할 뿐이다.나의 부모님이 주말이 되면 우리 손을 잡고 약수터에 오르고 휴가철이 되면 산으로 바다로 우리를 데리고 다니셨던 것처럼 나도 내 아이들에게 소중한 순간들을 더 많이 추억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세월이 많이 흐른 어느날 그들이 꺼내 볼 옛 사진 속에 함께 공유할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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