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Thanksgiving!
11/19/18  

미국에 이주해 처음 맞이했던 추수 감사절, 어릴 적 친구 부부가 우리 식구들을 초대했다. 그리 넓지 않은 집에 친구의 처가 식구들, 친구의 어머니와 두 여동생 부부, 또 그들의 자녀들, 필자의 아이들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루 종일 칠면조를 구웠고, 뒤뜰에서는 고기를 구우며 맥주를 마셨다. 저녁에는 잘 구워진 칠면조와 으깬 감자에 그레이비를 얹어 먹었다. 하루 종일 먹고 마시면서 지냈다. 말로만 듣던 미국의 전통 추수 감사절을 처음으로 직접 경험한 셈이다.

 

다음 해 추수 감사절은 우리 집에서 지냈다. 친구가 내게 했던 것처럼 그 해 미국에 이민 온 친구 가족을 초대했다. 커다란 칠면조를 사다가 하루 종일 오븐에서 구우며 감자 요리도 만들었다. 요리책을 봐 가면서 구워 낸 칠면조라 맛이 어떨까 걱정했는데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낯설기만 했던 추수 감사절 요리를 직접 만들어 먹어보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 비로소 미국에 정착해 살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3년째 되던 해부터는 마켓에서 사다 먹었다. 칠면조뿐만 아니라 추수 감사절용 음식을 패키지로 주문하고 찾아다 먹는 아주 간편한 방법을 택하니 훨씬 편했다. 그 후로 칠면조가 별로 내키지 않으면 갈비찜이나 만두 등 한국 음식으로 추수 감사절 상을 차리기도 했다. 각 가정마다 입맛이 다르니 원하는 음식으로 차려 먹으면 된다. 그동안 추수 감사절 상을 거쳐 간 음식들은 한식, 중식, 일식, 멕시코식, 등등 이민의 나라 미국답게 아주 다양하고 풍성했다.

 

그동안 미국에서 지낸 추수 감사절을 생각하노라니 만감이 교차한다. 이민 생활을 하면서 거쳐 간 모든 인연과 일어난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할 것들로 가득 차 있다.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정신없이 살다보면 감사한 마음을 잊게 된다.

 

그나마 매년 추수 감사절이 다가오면 좀 차분해진다. 추수 감사절은 일종의 연례쉼표이다. 바쁘고 정신없는 우리의 삶을 잠시 쉬어가면서 감사의 마음을 품어 보는 시간이다. 앞만 보고 치닫는 고단한 삶을 조용히 돌아보게 만드는 고마운 장치이다.

 

그런데 올해는 영 마음이 편치 않다. 캘리포니아에서 산불로 수많은 가옥이 전소되었고, 사망자가 60여명에 이르고 실종자가 600여 명에 이른다고 하니 말이다. 본래 이맘때면 각종 산불로 마음을 졸이곤 했지만 이처럼 많은 인명피해를 낸 적은 없었기에 더욱 마음이 아프고 속이 상한다.

 

지난 8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북동쪽으로 약 20마일 떨어진 뷰트카운티에서 발생한 산불이 산간마을 ‘파라다이스’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파라다이스’는 서울시 2/3크기이다. ‘캠프 파이어’라고 명명된 이 산불로 인해 주택 수백 채가 불에 탔다. 3만 명의 주민이 대피했고 60여 명이 사망했고, 수십 명이 부상자와 실종자가 600여 명에 달한다.

 

같은 날 LA 북서쪽 30마일 시미밸리 지역에서 발생한 ‘울시 파이어’ 산불은 시속 60마일이 넘는 강풍을 타고 바닷가 마을 ‘말리부시’까지 번졌다. 이로 인해 8만 3000여 에이커가 전소되었다. 진화율은 현재 약 50%에 불과하다. 앞으로 그 피해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주민 대피령이 내려져 북가주, 남가주 합해서 30여만 명이 대피한 상태이다.

 

캠프 파이어나 울시 파이어 같은 대형 산불 말고도 지금 이 시각 캘리포니아에서는 십여 개의 산불이 엄청난 산림을 태우고 있다. 이를 진화하기 위해 수 천 명의 소방관들이 낮과 밤을 구별하지 않고 싸우고 있다.

 

우리가 편안하게 추수 감사절을 즐기고 있는데 산불로 전 재산을 태우고 대피 중인 이재민들과 불길을 잡기 위해 불철주야 화마와 싸우고 있는 소방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특히 파라다이스는 마을 전체가 불에 타버렸다. 참담하다. 마음 같아서는 파라다이스로 달려가 소방관들과 함께 산불을 진화하고 불타버린 마을 재건에 앞장서고 싶다. 가능하다면 화재가 진압된 뒤에라도 파라다이스로 달려가 조그만 힘이나마 보태고 싶은 심정이다.

 

감사의 계절이 돌아왔다. 우리들이 편안히 생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많은 분들이 있다. 가까이에는 부모 형제 일가친척에서 이웃을 비롯한 우리들 주변에 많은 분들, 평소 그분들의 노고를 잊고 산다.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여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면서 우리 사회가 지탱되도록 노력하는 많은 분들께도 감사한다. 그리고 화마에 희생된 사람들과 전 재산을 잃고 낙담하고 있는 이재민들을 위해 기도한다. 끝으로 화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소방관들에게 화이팅을 외친다. 우리 모두 굳건히 딛고 일어설 것을 믿는다.

 

Happy Thanksgiving!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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