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절대 읽지 마시오!
12/03/18  

40년지기 친구들과 그들의 부인들이 휴대폰 내용 전부를 공유 한다는 내용의 영화 “완벽한 타인”. 어찌보면 단조로운 소재일지 모르지만 스마트폰이라 불리는 요즘 휴대폰이 잠금 중인 개인 정보 양은 S사의 모델명처럼 갤럭시급으로 어마어마하다. 집들이 중에 단순히 문자와 통화 내용을 공유한다는 게임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비밀들은 부부 사이는 물론이고 40년 우정까지 금가게 만들며 집들이라는 친목모임의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급 반전되고만다. (요즘말로 갑분싸 - “갑자기 분위기 싸”).

 

이 영화는 등장 인물들의 김치 싸대기 같은 막장의 막장 사생활이라는 소재와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으로 관객들의 몰입도를 극대화하여 벌써5백만 관객을 동원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흥행과 소문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나도 동네 친구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러갔다. 소문대로 영화는 자극적이었으며, 배우들의 쫄깃쫄깃한 대사처리는 블랙 코미디 장르를 더욱 맛깔스럽게 만들었다. 나 또한 동성친구들과 유쾌하게 웃으며, 씁쓸하지만 고개도 끄덕여가며, 어쩔 수 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영화를 보았다. 내 휴대폰이 잠금 해제되고 타인에게 공개 된다면?

 

얼마 전 일이었다. 처음 보는 나이가 지긋한 여성분이 내게 휴대폰을 빌려달라고 하였다. 당연히 나는 망설였고 대답을 주저하였다. 그 여성분에게 결국 휴대폰을 빌려줬지만 불안감에 휩싸여 통화 중에도 잔뜩 긴장하게 되었다. 예전 스마트폰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는 휴대폰을 빌리고 빌려주는 일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누군가 멀찌감치 떨어져 내 휴대폰으로 통화를 해도 이토록 불안하지 않았었다.

 

이는 마치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한 친구에게 함께 목욕탕에 가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의 기분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거절하기는 뭐하지만 딱히 끌리지 않는 그런 기분 말이다. 특히 요즘 휴대폰이 워낙 고가이기도 하고 분실 시 카드 분실과 같은 많은 행정적,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하다 보니 더욱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처음 보는 사람이 아니라 내 남편이 빌려달라고 한다면? 시어머니, 친구, 직장 동료가 빌려달라고 한다면 흔쾌히 빌려줄 수 있을까? 딱히 무슨 중대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내 휴대폰을 타인에게 건내는 것은 역시 망설이게 될 것 같다. 망설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내 휴대폰을 사용하는 동안 어디 멀리가지 못하고 곁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하지만 유심히 내 폰만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손에서 놓지 못하는 휴대폰은 어느 새 우리의 공적, 사적, 사사적, 아니 사사사사사적 영역을 모두 공유하고 기억한다. 휴대폰이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내가 망각한 지난 일도 기억해 내고 나에게 알려준다. 내가 6년 전 오늘 누구와 무엇을 하였는지, 남편과 지난 한 달 간 몇 번 통화를 하였는지, 내 SNS에 가장 많은 덧글을 올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든 일정, 연락처, 결제 정보, 구매 내역, 친구와의 대화 내용 등 수많은 것들을 너무나도 철저하고 정확하게 내 휴대폰은 고스란히 저장하고 있다. 누구에 대한 험담일 수도, 나의 소소하지만 부끄러운 비밀일 수도 있는 그 모든 것들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판도라가 열지 말라는 상자의 뚜껑을 열어 상자 속에 갇혀 있던 온갖 죄악과 재앙이 세상에 퍼진다는 신화로 우리가 생활 속에서 호기심이 부른 참극을 말할 때 자주 오르내리는 표현이다. 불필요한 진실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휴대폰, 우리 모두는 어느덧 휴대폰이라는 어쩔 수 없는 나만의 판도라 상자를 지니고 살아간다.

 

당신은 당신의 남편, 친구, 혹은 자녀의 판도라 상자를 열지 않고 지켜낼 자신이 있는가? 인간의 호기심은 정말 놀랍다. 당신도 ‘이 글을 절대 읽지 마시오'가 제목인 이 글을 벌써 다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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