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싫다
12/17/18  

서울에 와서 두 번째로 맞이하는 겨울, 나는 사실 이곳 겨울이 힘들다. 캘리포니아에서만 이십여 년을 살아온 터라 이런 극강의 한파는 적응도 안될 뿐더러 을씨년스럽기까지한 겨울 풍경에 마음까지 쓸쓸해지곤 한다. 오후 다섯시만 지나면 어두컴컴해지는 탓에 피로가 일찍 찾아오는 것만 같고 미끄럽게 얼어붙은 땅 위를 걸어다니는 것도 서툴어 어정쩡한 걸음이 더뎌진다. 피부를 에는 칼바람은 내 혼을 쏙 빼놓을 정도라 외출도 꺼려지고 집에서 자꾸 무기력해지고 만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겨울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감기이다. 아이 넷을 키우는 집에서 감기는 정말 가장 끔찍한 질병으로 한 번 시작이 되면 영락없이 돌림병처럼 모두 시달리게 된다.  작년 겨울에도 아이들이 돌아가며 감기며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병원 문지방을 부지런히도 드나들며 진땀을 흘렸는데 올 겨울도 조짐이 좋지 않다.

 

올해도 연례 행사처럼 감기가 우리집을 강타했다. 첫째가 아침 저녁으로 기침을 하길래 동네 의원에 가서 기침약을 처방 받아 온지 며칠 되지 않아 막내가 콧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나도 목이 따끔따끔하고 하루 종일 기운이 없는 날들이 계속 되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셋째도 열이 나기 시작했다. 열과 기침이 계속되면 잠 못 드는 밤이 길어져 사람이 더 피폐해지고 마는데 오늘로 사흘째를 맞이한 나는 좀비같은 몰골을 하고 있다.

 

이렇게 돌림병이 한 바퀴 돌고 아픈 아이들이 입맛을 찾아갈 때쯤이면 나는 결국 제일 마지막에 병이 나서 쓰러질 지경이 되고 마는데 그때는 이미 온식구들이 감기라면 지긋지긋해져서 나는 별로 아픈 티를 낼 수조차 없게 되어버린다. 쓸쓸한 마음으로 약봉투를 입에 털어넣으며 하루를 견디다 보면 스멀스멀 어릴 때 기억이 떠오른다.

 

결혼하기 전까지만해도 나는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 건강 체질이었다. 어릴 때도 1년에 한 번 아플까 말까 건강해서 어쩌다가 병이 나면 그 당시 귀했던 바나나나 파인애플도 얻어 먹고 집에서 꽤나 대접을 받았었다. 고열로 축 늘어진 나를 업고 병원에 가던 엄마의 빠른 발걸음이나 아픈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은 아직도 두고 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아플 때 보살핌을 받았던 기억 때문인가 살면서 가끔은 차라리 몸살 감기라도 걸려서 꼼짝없이 앓아 눕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실제로 감기 걸릴 심산으로 감기에 안 좋은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 하며 감기에 걸리려고 안간힘을 써 본 적도 있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건강했던 나도 이제 매해 감기가 유행할 때면 빠지지 않고 감기에 걸린다. 애 넷 엄마의 병세가 길어지면 집안이 엉망진창, 거의 재난 수준이라 요즘엔 내 몸도 잘 챙기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비염이 심해지고 목이 칼칼하게 아파오면 오래전부터 잡혀 있던 선약을 캔슬하기도하고 몸이 피곤하면 무리해서 외출을 하거나 활동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바로 몇 주 전 첫눈이 내렸을 때는 그렇게 반갑고 좋더니 식구들이 몽땅 감기에 걸리고 나니 겨울이 벌써부터 괴롭다. 이제 겨우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을 뿐인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 남은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아찔한 심정이다. 아침부터 학교 가는아이들을 중무장 시키고 핫팩도 하나씩 챙겨 주머니에 넣어주다 보니 며칠 전 캘리포니아로 출장 간 남편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

 

남가주 어딘가에서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당신도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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