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 캐슬
12/26/18  

출근 시간, 많은 인파로 꼼짝달싹할 수 없을 만큼 붐비는 지하철이 잠실역에 정차한다. 일제히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쩌다니 내가 그 중 제일 선두에 섰다. 어쩔 수 없이 그 흐름에 동요되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힘찬 발걸음을 재촉한다. 여기서 우물쭈물하거나 발이라도 헛디디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치이고 난감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고개를 살짝 돌려 뒤를 보니 수많은 인파가 내 뒤를 따르고 있다. 기분이 이상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선두를 놓치고 싶지 않다. 마치 마라톤 경기 중 선두에 선 느낌이랄까…… 제일 먼저 출구로 올라간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서두를 이유도 없는데 자꾸만 발걸음이 빨라져 걷는 건지 뛰는 건지 모르겠다. 

                                                                                                                                 

요즘 국내에서는 “SKY 캐슬”이라는 드라마가 꽤 이슈가 되고 있다.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대한민국 상위 1%들이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치열하고도 처절한 몸부림과 욕망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정말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둘째치고 영혼마저 팔아 넘길 것 같은 캐릭터들의 등장으로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설마 세상에 이런 일이 있겠나 싶은데 드라마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실제로 이런 일들이 존재한다는 인터뷰 기사들이 올라왔다. 기사들을 보고 나니 이게 현재 내가 사는 곳의 현실이고 우리 아이들도 이런 현실을 피해갈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숨통이 조여오는 듯했다. 

 

어느 곳에나 있겠지만 한국에 오니 정말 아이의 교육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감수하는 엄마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놀라울 정도의 치밀함과 꼼꼼함, 혀를 내두를 정도의 정보력을 지닌 엄마들을 만나면 뭔가 뒤통수를 얻어 맞은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학원 이름이며 강사진의 스케줄까지 꿰고 있으며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자녀의 중학교, 고등학교까지의 청사진을 빈틈없이 그려내고 있는 것을 보면 내가 너무 아이의 교육에 무관심한 건 아닌가 하는 자책마저 들곤 한다. 

 

나는 사교육은 아이들 취미 위주로 하고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을 가장 중요시하며 선행학습은 부질없다 생각하는 나름 용감하고 소신 있는 엄마 노릇을 하고는 있다지만 역시나 이따금씩 불안감에 휩싸이곤 한다. 바로 아이가 성적을 잘 받아오지 못하거나 본인의 성적에 위축된 모습을 보일 때, 친구들이 모두 학원에 다니는 통에 함께 놀 친구가 없을 때이다. 아무리 지금 이 순간 아이의 행복이 우선이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지만 나 때문에 아이가 미래에 경쟁력 없는 사람이 되면 어쩌나 싶어서 불안하고 끊임없이 갈등하는 것이다.    

       

“SKY 캐슬” 드라마에서 극중 어느 극성 엄마가 이렇게 말한다. “내 새끼 이렇게 고생하는 거 보면 그냥 행복하게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고 아침 저녁으로 마음이 바뀌어 사실 엄마도 뭐가 맞는지 잘 모르겠어.”라고. 내 자식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그저 무탈하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사회에 나가 떳떳하게 성공했노라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것, 이것이 바로 대다수의 일반적인 엄마들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먼저 시작했다고, 선두에 섰다고 뭐가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지나치게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다 미친 듯이 달려간다고 모두 1등이 되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1등, 명문대가 세상의 행복을 보장해줄 리 없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모두들 출근길 지하철 인파 물결처럼 생각할 틈도 없이, 멈추지 못한 채 그냥 휘말려 흘러가고 있는 것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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