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솔
04/23/18  

   초등학교 2학년 8세때의 일인데도 너무나 생생히 기억이 난다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교실에서 놀다가 평소에도 장난이  남학생이 주먹으로  팔을 내리쳤는데 어찌나 아프던지  크게 비명을질렀고  순간 수업 시간을 알리는 벨이 울렸다책상에 앉아계시던 담임 선생님이 굉장히 화가난 얼굴로 일어났고 나를 때린 남학생을 불러내시겠구나하는 순간 격앙된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셨다영문도 모른채 교탁 앞으로 걸어나갔고 그는 어디선가 나타난 양복솔로 힘차게  뺨을 내리쳤아무런 질문도 훈계도 없었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였다

 

   나는 너무도 억울하고 부끄럽고 어이가 없어서 수업이 끝날때까지 내내 숨죽여 울다가 집에 돌아왔다집에 오니 한쪽 턱이 빨갛게 부어있었다엄마가 보시고는 왜그러냐고 물으셨지만 나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차마 말하지 못했다. 엄마는 이유없이 턱이 붓는 딸을 동네 약국에 데려가셨고 약사가 볼거리가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던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턱이 어떻게괜찮아졌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다행히 턱은 지금까지  문제는 없어보인다

 

   3학년에 진학한  어느날 나를 때린 2학년때 담임 선생님을 우연히 마주쳤는데  담배 냄새가 나는 손을 내밀어  볼을 만지며  지내냐고 물으셨다그의 두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말할때마다 고약한 담배냄새와 술냄새가 풍겨왔다내가  선생님에 대해 기억하는 유일한 두가지 모습  하나이다다른 하나는 당연히 양복솔을휘두르던 모습이고

 

   내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어린 학생들에게도 교사가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너무나 당연했었기 때문에 단체기합엎드려뻗쳐오리걸음구름의자통닭구이와 같은 군대에서나 있을법한체벌은 기본이고  손바닥손등,  머리엉덩이허벅지  닥치는대로 때리는 일이 비일비재했었다하지만 양복솔로 (한쪽은 나무재질한쪽은 검정 솔이 있는 아주 흔한 양복솔뺨을 강타당한 일은평생 처음있는 일이였기에 나는 꽤나 오랫동안 그때의 일을 떠올리곤했다

 

   선생님은 그날도 전날밤 숙취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나의 비명소리가 그의 신경을 건드렸던 것일까아니면 평소 나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보고 있었는데 그날 폭발해버린걸까여러가지 가정과 추측을해봤지만 나는 아직도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가 얼마나 잘못을하면 남자 어른한테 양복솔로 뺨을 맞게 된단말인가 상상력이 풍부한 나이지만 그의 폭력을 정당화할 있는 피치 못할 사정이라는 것을 도저히 만들어낼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뉴스에서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폭행한 선생님밥을굶기고 매일매일 매질을  어머니백일된 아이를 굶어죽인 게임중독 아버지, 7 아이를  속에 집어던지고 체벌한 수영 강사  비정한 어른들의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예전에는 묵인하고 쉬쉬했던 일들이 이제는 조금씩 드러나고 알려지니 더욱 많아진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특히 더욱 슬프고 끔찍한 것은 아동의 정신적 육체적 학대가  대부분 가정학교교육현장보호시설  아이들을보호하고 교육해야할 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이다훈육으로 위장되고 관습이나 전통이라고 포장되어 아직도 절되지 못한채 남아있는 것이다

 

   사실 진지하게 아동학대에 관한 글을 쓰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그저 지금도 이따금씩 양복솔이  앞으로 날아들던 기억이나면 몹시억울하고 화가난다그때 나를 때린 교사에게만 화가 나는 것은 아니다볼거리 환자처럼 퉁퉁 부은 턱을 가족에게마저 숨겨야했던 자신과 그게 그렇게 당연했던  시절  날들에 화가 난다그리고 아직도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겉모습만 어른인 사람들의 터무니없는 횡포에 화가 난다

 

   양복솔은 양복에 붙은 먼지를 떼어낼때 쓰는 도구이다그리고 교실에서 양복솔을 휘두르는 사람은 적어도 믿을만한 진짜 어른 아니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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