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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열두 살
01/02/19  

“엄마”

“……”

“엄마, 진지하게 대답해줄 수 있어?”

진지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 때문일까? 아니면 굳게 닫힌 문 때문일까? 아니면 나를 바라보는 아들의 결연한 눈빛 때문일까? 무슨 일일까? 학교? 학업? 교우 관계? 이성 문제? 설마 학교 폭력? 이제 열두 살이 되는 아들의 한마디에 심장이 요동치고 머리가 아득해진다. 애써 당황한 표정을 추스르며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대답해 본다.

“어, 왜?”

“엄마, 진지하게 대답해줄 수 있어?”

“그래. 뭔 데?”

“산타가 있어? 없어?”

‘그래, 올 것이 왔구나! 아…… 5학년이면 알아서 눈치채고 넘어가 줄만도 한데 이걸 꼭 집고 넘어가려 하다니 역시 우리집 장남답다. 그래도 혹시 동생들이 들을까 봐 문을 닫은 거구나’ 난감한 기색을 최대한 숨기며 생각나는 대로 아무 말이나 쏟아내기 시작한다.

 

“산타는 믿는 사람들에게만 존재한단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이 아주 많거든.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지.”  대충 이런 식에 뻔한 이야기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던 것 같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선물은 엄마 아빠가 주는 거야? 산타가 주는 거야?”

“음……, 그건 어른들 간의 약속이라 다 말해줄 수는 없는데 한 가지 확실한 건 엄마 아빠가 산타의 헬퍼라는 사실이지. 그것까지만 말해줄게.”

 

말없이 생각에 잠긴 듯 듣고 있던 아이는 뭔가 체념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그 맑고 영롱한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아들의 눈물은 무슨 의미였을까? 

 

얼마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산타의 진실을 알게 된 나이는 평균 8살이라는 흥미로운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8명 중 1명은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 부모에게 강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아들의 눈물은 그런 의미였을까? 산타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한 열두 살 아들의 눈물은 나에게도 적지않은 쓸쓸함을 안겨주었다. 이빨 요정, 산타클로스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경이로운 것들을 믿어 의심치 않는 유년 시절이 이렇게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열두 살쯤, <케빈은 열두 살>이라는 미국 1960-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TV드라마를 참 좋아했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케빈이 예쁘장한 얼굴의 여자 친구를 좋아하고 친구와 갈등하고 열두 살의 최대 위기를 경험할 때 같이 공감하며 함께 웃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열두 살 케빈의 이야기에 폭풍 공감하던 나는 어느새 중년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바로 우리집 첫째가 2019년 새해 열두 살이 된다. 황금 돼지띠 해에 태어났다고 호들갑을 떨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 아이가 열두 살이 된 것이다. 만지면 부서질까 울면 왜 우는지도 몰라 호들갑과 걱정으로 부산스러웠던 날들, 아무리 부모라지만 처음이라 늘 힘들고 어설플 수밖에 없는 애정과 애증으로 뒤범벅된 지난 12년이 이렇게 흘러가버린 것이다. 사남매 중 첫째로 또래 아이들보다 많은 임무와 책임들을 짊어지고 있지만 조용히 불평하면서도 나름 잘 버티고 인내해준 아들이 어느새 열두 살 소년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반짝이는 눈망울로 새벽같이 청명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산타가 있냐고……

 

아들아, 열두 살이 되는 아들아, 산타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한 나의 아들아, 이 세상에 사랑과 관용, 헌신의 노력들이 함께 하 는한 산타는 영원히 존재한단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더 아름답고 더 즐겁지 않겠니! 엄마는 더 오래오래 네가 경이로운 세상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19 기해년, 너의 열두 살을 응원하며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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