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친구야
01/07/19  

타운뉴스 시무식 때마다 떡을 한 시루씩 직접 들고 와서 새해를 함께 시작하는 친구가 올해도 잊지 않고 찾아 주었다. 올해는 떡집에 맞추지 않고 부인이 직접 정성스럽게 만든 약식(藥食)을 선물했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격려해주고 위로하며 형님처럼 보살펴주는 초등학교 동창생이다. 친구는 시무식을 마칠 때까지 함께 해주었고, 덕담을 나누다 일터로 갔다.

 

잠시 후에 전화가 왔다. 환갑 되던 해에 목회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친구다. 함께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수 년 간 수련을 함께 하던 친구는 예수를 만나 깨달음을 얻었다며 목사가 되었다. 새해 덕담을 주고받다가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새해 첫날 친구와 식사를 함께 하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식당으로 향했다. 식사 도중에 초등학교 동창이면서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함께 식사하자고 전화했다. 식사하고 있던 식당으로 오라고 했다. 두 사람은 큰딸의 결혼식에서 만난 적이 있다. 성경공부에도 참여 한 적이 있기에 구면이었다.

 

LA에서 근무하던 직장에서 갑자기 해직당해 어렵고 힘들던 시절,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힘이 되었던 친구들이다. 정성껏 점심식사를 대접하며 새해를 열었다.

 

그날 저녁, 미국 사는 중학교 동창들 모임 카톡방에 가족사진이 담긴 연하장을 만들어 올렸다. 옛날 같으면 일일이 한 사람 한 사람 카드를 써서 보내야 하는데 얼마나 편해졌는지 모른다. 곧 답이 올라왔다.

 

‘멋진 연하장이다. 애들이 많이 컸구나!’ 내가 답을 했다. ‘이제 막내도 5월에 졸업하고 7월부터 출근한다네.‘ 그러자 다른 친구가 또 올렸다. ‘와우 22년 전 생각나네. 고생 끝 행복 시작이네‘

 

22년 전, 정확하게 21년 5개월 전 막내가 태어나던 때를 생각하고 올린 글이리라. 비디오 가게를 하면서 어릴 적 동네 친구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때였다.

당시 매형 봉제 공장에서 일하다가 독립해서 자기 회사를 하던 친구가 여러 가지로 힘들어 회사 문을 닫고 다시 회사를 여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본인 명의로 할 수가 없다며 내가 명의상 회사 대표로 해줄 수 있냐고 했다. 그렇게 하겠다고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두 종류의 시험에 패스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법과 안전에 관한 시험이었다. 책 두 권을 대학입학시험 공부하듯이 해서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법적으로 봉제공장 대표가 되었다. 친구는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주 회사에 나와 일을 배워 봉제공장을 차리라고 했다. 봉제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내가 주로 한 일은 하청을 주는 회사에 가서 제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천과 고무줄, 혹은 단추 등을 받아 오는 일이었다. 참 그때 이 회사는 주로 여성 수영복을 만들었다. 수영복이 다른 옷들보다 만들기 힘들어 장당 수익이 많았다. 티셔츠 한 장에 몇 전을 번다면 수영복은 한 장을 만들면 4~5달러를 받았다. 아무튼 그맘때를 기억하고 친구가 하는 말이다. 막내가 1997년에 태어났으니까.

 

내게 ‘고생끝 행복시작’이라며 격려의 글을 보냈던 친구는 1975년 겨울, 스케이트장에서 어묵과 떡볶이를 팔았다. 친구 매형이 블록 공장을 하던 곳에 겨울철에 물을 받아 스케이트장을 오픈했는데 스케이트장 매니저를 하면서 떡볶이도 팔았다. 그곳에 가끔 놀러 갔다. 친구는 어둑어둑해지면 스케이트장 문을 닫고 근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대접하곤 했다. 헤어질 무렵 내게 돈을 쥐어주었다. 그 돈으로 연탄 한 장을 사고 쌀을 한 되 사서 집으로 왔다. 친구는 그때 그 어렵던 시절도 기억하리라. 오늘 가족사진을 보고 막내아들의 취업 소식을 들으니 감회가 새로울 터였다.

 

그렇다. 내 곁에는 참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미국 살이를 시작하던 첫해 한 친구는 운전 면허시험 보는데 데리고 갔었고 이것저것 서투른 이민생활이 안정되도록 보살펴 주었다. 또 매주 교회로 인도해서 하나님 말씀을 듣도록 해줬다. 주말이면 아이들까지 초대해서 점심 저녁까지 먹고 가도록 배려했다. 해마다 타운뉴스 시무식 때마다 떡을 한 시루씩 직접 들고 와서 새해를 함께 시작하면서 어렵고 힘들 때마다 격려해주고 위로해주고 있는 초등학교 동창생,

 

타운뉴스를 인수할 때 거액을 현금으로 주면서 갖다 쓰라고 했던 친구, 오늘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친구들이 내게 온정을 베풀고 격려해주고 힘을 주었던가.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있었을까. 아니 오늘의 타운뉴스가 있었을까. 지금보다 더 건강한 신문, 더 알찬 신문을 만드는 것이 보답하는 길이라고 굳게 다짐하며 2019년의 문을 연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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