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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가게
01/07/19  

지난 여름 아이들과 줄기차게 드나들며 아이스크림을 사다 먹던 집 앞 아이스크림 할인 매장이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을 무렵 갑자기 문을 닫았다. 편의점이나 대형 마트보다 적어도 개당 백원씩 저렴하고 종류도 다양해서 온식구가 몰려가서 입맛대로 마음껏 골라 담는 재미가 있어 좋아했던 가게다. 우리 가족에게는 여름 이벤트와 같던 매장의 폐업을 아쉬워할 겨를도 없이 얼마 되지 않아 새 가게가 들어올 공사가 시작되었다. 지나갈 때마다 힐끔힐끔 들여다보니 작은 선술집이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동네에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호프집들이 이미 많지만 일본식 꼬치와 나가사키 짬뽕 같은 것을 먹을 수 있는 선술집이라니 왠지 기대가 되어 개업하기만을 기다렸다.

 

선술집이 개업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어느 저녁, 남편과 함께 간단한 저녁을 먹기 위해 기대되는 마음으로 찾아갔다. 동업자로 보이는 두 명의 젊은 사장 겸 쉐프들이 요즘 스타일의 쿨한 인사를 건내며 아무데나 앉으라고 해서 오픈 키친이 보이는 바에 앉았다. 첫 방문이니만큼 사장님과 몇 마디 나누며 인사도 하고 요리하는 모습도 구경할 생각이었는데 앉자마자 키친에서 풍기는 악취에 살짝 비위가 상했다. 방문 리뷰를 하자면 음식맛은 특별할 것이 없고 음식값은 동네 메뉴치고 싸지 않고 주문받는 사장님의 입에서는 담배 냄새가 나고 이제 막 오픈한 가게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을 단골로 만들고자 하는 간절한 친절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첫 방문 이후 다시는 가지 않았다.

 

우리 동네 또한 서울의 여느 동네와 마찬가지로 아파트가 많아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보니 상권 또한 밀집되어 있다. 특히 부동산, 미용실은 정말 신기할 정도로 많아서 상가 건물마다 하나씩 있을 정도이고 커피숍 또한 한 집 걸러 하나씩은 있는 모양새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넓으니 잘된 일이구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 산지 일년반인데 가게들의 개업과 폐업이 연이어지는 것을 보니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 가게에 손님이 좀 없어보인다 싶으면 이내 가게 문을 닫고 또 얼마가지 않아 다른 가게가 새롭게 문을 여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말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도 동네 가게들끼리 치열한 전쟁을 치루고 있는 모양이다.  거기에 프랜차이즈점이나 기업들까지 호시탐탐 전쟁에 끼어들 기회를 엿보고 있으니 경쟁에서 밀린 영세업자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장사가 안 되는 가게들도 그만한 이유가 있어보인다. 영업시간과 상관없이 영업을 하고 손님이 와도 본척만척 하던 일을 계속하고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지인과 잡담을 하거나 전화 통화를 하며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주먹구구 식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대신 작은 동네 빵집을 찾으면 회전이 느려 신선하지 못한 빵을 사게되는 경우가 많고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을 찾으면 청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끈적끈적한 식탁에 앉아 고춧가루 붙은 컵을 손에 쥐고도 바꿔달라고 말하기를 망설여야만 한다. 동네 장사이니 그러려니 싶다가도 여러 번 접하다 보면 손님으로서 썩 기분이 좋지 못하다.

 

나 역시 자영업을 했던 사람으로서 동네 소규모 자영업자들을 지지하고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는 있지만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는 소비자 심리가 발동하여 매장 깨끗하고 물건값 저렴하고 서비스 친절한 곳으로 발길이 닿기 마련이다. 탈출구 없는 생존 게임이라고도 불리는 험난한 자영업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동네 터줏대감 슈퍼 사장님이든 날씨가 추워지면 다시 돌아오는 붕어빵 가게 사장님이든 손님을 최우선으로 하는 서비스 정신부터 중무장 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취업도 어렵고 50대부터 퇴직하는 것이 당연한 우리나라에서 결국 자영업은 모두 한번쯤은 고민해볼 수밖에 없는 선택이다 보니 월급쟁이 남편을 두고도 자영업 폐업이 속출한다는 신문 기사를 읽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리고 장사가 안 되어 울상 짓는 사장님, 최저임금 인상으로 알바 대신 근무하는 사장님의 마음도 남의 일 같지 않다.  아직 내가 직접 자영업 전쟁에 뛰어들 엄두는 나지 않지만 그래도 나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우리 동네에 장수 가게들이 더 많이 생겨나길 희망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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