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가기 싫은 날
04/23/18  

몇 해 전 한국에서 열 살짜리 초등학생이 쓴 잔혹동시라는 것이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이시는 단순히 인터넷에 떠도는 시가 아니라 출판사를 통해서 정식으로 출간된 동시집에 들어있는 여러 시 중 하나였다내용은 이렇다.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 이렇게 / 엄마를 씹어 먹어 / 삶아 먹고 구워 먹어 / 눈깔을 파먹어

 

감정을 순화하거나 거르지 않고 학원에 가기 싫은 자신의 마음 그대로 진솔하게 표현했다는생각은 들지만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은 그저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잔인하고 충격적인 동시의 제목이 학원가기 싫은 날이었다는 사실에서 그 불편한 마음이 더욱 커진 듯하다분명 엄마는 아이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학원에 보냈을 텐데 아이는 학원에 보내는 엄마를 죽일 만큼 저주하고 있는 상황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이 시를 갖고 표현의 자유다,  언어 폭력이다 그리고 동시집을 폐기하냐 마냐 등 논란이 많았는데 결국우리나라의 과도한 사교육 열풍에 대한 일침으로 보는 시각도 많았다.

 

내 나라를 떠나 이민조기 유학기러기 가족을 감행하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자녀 교육을손꼽는다한국보다 덜 치열하고 덜 고단한 교육 환경을 갈망한 것이다물론  미국에도 사교육이 존재하지만 한국처럼 공교육이 붕괴되고 사교육의 의존도가 심하지는 않다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업을 갖게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고 성공의 지표라고 보는 사람들도 분명 많지만 미국 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태도는 한국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동서를 막론하고사랑하는 자녀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미국은 각자의 철학이나 신념가정 형편이나 환경에 따라서 자녀 교육에 대한 지원과 투자가 매우 다양하게존재한다대부분의 부모가 자신의 형편이나 상황을 고려치 않고 자식을 위해 인생 전체를 희생하며 자녀 교육에 올인하는 한국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한국의 끔찍한 교육 현실에 진저리 치며 고국을 떠났지만 한인들이 밀집한 지역은 어느 나라든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미국이든 한국이든 지나친 사교육은 이제는 경쟁에 더가까워지고 있는 듯 보인다남들 다 한다는 사교육 앞에서 내 아이만 뒤처지지 않을까결국대학 진학이나 취업 시 불리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이 공포가 되어 이성적인 판단을 제어하고 결국 사교육 대열에 뛰어드는 것이다그러고보니 옛날에는 과도하게 사교육을 좇는엄마들에게 극성 엄마”, “치맛바람이라는 부정적인 수식어가 붙곤 했는데 어느덧 이런 표현은 이제 사용하지 않고 모두가 당연한 듯 자연스럽게 사교육을 받아들이고 있다오히려 아이를 아무데도 보내지 않거나 정보에 밝지 않은 엄마들을  무지하고 무능한 엄마 취급하는 경우도 종종 목격하게 된다선행 학습을 부추기며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방해하고 아이들의 나이와 학년의 구분을 없애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중학교 레벨의 책을 읽거나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을 으스대며 교육의 기본적인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 허다하다모든 아이들이 하나같이 뛰어난 영재일 수 없건만 모두 영재 교육을 받길 바라고 아이 저마다 재능과 특기가 다를텐데 기본적으로 공부는 잘해주길 바란다아이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학원다 같이 안 보내면 문제가 해결될 텐데 참 이상하게도 다 같이 보내려고들 안달이다.

 

잔혹동시 속에서 잔인하게 엄마를 죽이는 상상을 하던 아이처럼 우리 큰 아이도 열 살이다.재작년인가 아이가 또래 사내 아이들보다 운동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동네 어린이 농구 교실에 등록을 해 주었다별 불평없이 농구 수업에 임했지만 실력은 형편없었다재등록하기전에 아이에게 계속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망설이는 눈빛으로 엄만 내가 계속 했으면 좋겠어?” 하고 물었다엄마는 전혀 상관없다고 했더니 그럼 자긴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했고 우리는 재등록하지 않았다.

 

아이가 나를 통해 이 세상에 왔지만 분명 나와 같을 수 없고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다아이를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고 자신의 인생에 주도권을 가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응원하는 것이부모의 가장 큰 역할이 아닐까 싶다학원 가기 싫은 날내 아이가 엄마를 증오하는 대신 솔직한 심정을 말해 주길…… 그리고 나도 그 아이의 등을 떠밀지 않고 토닥여 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학원 가기 싫은 날은…… 그냥 안 가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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