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음악 이야기
01/14/19  

며칠 전 아이들과 놀면서 내가 어릴 때 부르던 동요며 만화영화 주제곡들을 메들리로 불러줬더니 아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좋아했다. 마음에 드는 곡은 몇 번씩 다시 불러 달라하고 여러 번 불러준 노래는 기억이 나는지 며칠이 지난 후에도 흥얼거렸다. 요즘 아이들은 부르지 않는 옛날 고릿적 노래들을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는 것을 보니 뭔가 신기하기도 하고 흐뭇한 마음도 생겼다. 가만, 그러고보니 내가 가사를 외워 부르는 대부분의 노래들도 모두 어릴 때 배운 것들이다.

 

나의 부모님은 젊었을 때 음악을 꽤나 좋아하셨던 듯싶다. 틈만 나면 노래를 흥얼거리셨고 기분이 좋으실 때면 평소 자주 부르는 18번을 목청 높여 한 곡조 뽑아내곤 하셨다. 어린 나에게는 생소했던 유명 팝송의 가수나 제목, 심지어 가사까지 줄줄 꿰고 계셨고 “주부가요 열창”, “대학 가요제”, “가요톱텐”, “젊은의 행진”같은 음악 프로그램을 즐겨 보셨다.

 

초등학교 때 새 학기가 되어 교과서를 받아오면 엄마는 꼭 음악 책부터 꺼내보시고 아는 동요나 가곡들을 빠짐없이 불러주셨다. 원래 엄마는 노래 부르는데 꽤 소질이 있는 편이여서 어릴 땐 엄마가 “주부가요 열창”같은 노래 경연 대회에 나가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바랐지만 엄마의 능력은 우리에게 노래를 불러주시는 정도에서 그치셨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가 아버지가 전축을 집에 들이셨다. 잘은 모르지만 아버지가 꽤 애지중지 하시는 걸로 봐서는 가격이 꽤 나가는 물건이었나 보다. 그 당시 내 방이 바로 그 전축이 있는 거실 겸 방이었는데 한동안 엄마는 아침마다 그 전축으로 노래를 틀어 나의 아침 잠을 깨우셨다. 음악을 들으며 일어나는 아침은 어린 내가 느끼기에도 뭔가 좀 격이 다른 기분이 들기 충분했다. 어릴 적에 부모님이 즐겨 듣고 부르시던 노래들이 불후의 명곡들이었다는 사실은 세월이 흘러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레코드판이며 카세트 테이프를 야금 야금 듣기 시작한 나보다 세 살 위 오빠는 타고난 음악성까지 겸비하며 어릴 때부터 음악 쪽으로 꽤나 두각을 나타냈다.  한 번 들어본 노래는 악보없이 피아노로 칠 수 있었고 음악 수업 때 배운 단소 실력이 뛰어나서 TV 교육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오빠는 꼭 노래 불렀다. 일반 아이들처럼 어른들이 멍석을 깔아주면 부끄러워서 몸을 베베 꼬지도 않고 담담히 나가서 침착하게 노래 한 곡을 완창하던 오빠를 보며 나중에 커서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 같은데 나가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오빠는 여전히 음악을 참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만나면 내가 모르는 다양한 장르와 국적의 노래들을 추천해주고 노래와 얽힌 이야기들을 이야기해주며 두 눈을 반짝이곤 한다.

 

음악을 유난히 좋아하던 가족 덕분에 나도 그럭저럭 음악을 많이 접하고 좋아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유년기나 청소년기에 들었던 음악은 일생 동안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나 역시 우연히 그때 그 노래들을 듣게 되면 귀뿐 아니라 머리와 가슴이 덩달아 반응을 한다. 마치 어릴 적 친구를 다시 만난 기분이랄까…… 분명 오랜만인데 흥얼흥얼 따라 부르다보면 구구단 노래처럼 전곡을 다 따라 부를 수가 있게 된다. 지금도 오빠와 함께 연습하던 이문세 고은희의 “이별 이야기”, 엄마가 가장 폼나게 부르시던 패티김의 “초우”, 아버지가 노래방에서 처음 불러주신 시나트라의 “My way”는 내 안에 특별히 남아 함께 나이 들어 가고 있다. 나는 요즘 고작 설거지할 때나 음악을 듣는 편인데 나의 아이들은 과연 엄마를 떠올리며 어떤 노래를 기억해주려나……

 

보태기 - 이 칼럼은 30년 전 수영 배우러 다닐 때  준비 운동 음악으로 울려퍼지던 이선희의 “한바탕 웃음으로”를 엉겹결에 완창한 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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