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향기
04/23/18  

봄마다 우리 동네를 보랏빛으로 황홀하게 물들이는 자카란다 꽃이 올해도 만발하다자카란다는 열대나 아열대 지역과 같이 따뜻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 제법 키가 큰 나무에서 피어나는꽃인데 남가주 곳곳에서 가로수로 만날 수 있다봄마다 가로수길을 환상의 꽃그늘로 드리우는 자카란다는 우리나라의 벚꽃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벚꽃처럼 비 내린 후 금새 져버리지않고 4월부터 피어나기 시작해서 해가 쨍쨍해질 때까지 두어 달 꽃들을 달고 있어서 더 기특하다꽃이 질 때는 꽃송이가 통째로 떨어져 땅을 보랏빛으로 수놓으며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그림 동화나 판타지 영화 속에 나오는 환상의 나무처럼 아름다운데 심지어 꽃말은 화사한 행복이라고 하니 이 또한 참으로 낭만적이다.

 

자카란다의 보랏빛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십여 년 전 나홀로 배낭여행 중에 베를린에서 만난 동갑내기 재일교포 3세 김정대이다혼자 벤치에 앉아 여행일지를 쓰고 있던 나에게일본어로 일본인이냐고 물었고 영어로 한국인이라고 답하자 몹시 반가워하며 본인도 한국인이라고 했다한국어는 전혀 못했지만 한글로 본인의 이름을 써내려가는 손에 자부심과 자긍심이 느껴졌다.  까무잡잡하고 다부진 생김새에 선량한 미소에는 사람 좋은 향기가 묻어났다.나는 그 당시 한달 간의 배낭 여행중 일주일차였고 어제도 오늘도 혼자였기 때문에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내심 반가웠다.

 

우리는 그날 특별한 합의를 거치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여행 동무가 되어 차가운 회색의 베를린을 걷고 또 걸었다정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정원사가 되었는데 한달에 열흘 일하고 하루에 4백불씩 번다며 일하는게 매우 만족스럽다고 했다나는 여름방학 직전에 대학에서 기초 일본어 강의를 수강했었고 덕분에 이런 대화에 절반은 일본어로소통이 가능했다이날은 내 인생에서 일본어를 배워서 가장 유용했던 찬란한 순간으로 손꼽는다.

 

정대는 유난히도 걷는 것을 좋아해서 우리는 거의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었다그렇게 걷다가소나기가 쏟아지면 나무 밑에 몸을 피하고 비가 잦아들면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그렇게 얼마나 걸었던 걸까…… 무릎 뒤쪽이 끊어질듯 아팠고 얼마나 지치고 고단했던지 걸으면서 감기는 눈꺼풀을 주체하기 힘들었다정대는 내 눈치를 살피며 내가 너무 힘들어하면 알 수 없는노래를  불러 주고 형편없는 영어에 나를 배려한 간단한 일본어로 계속해서 나를 재미있게 해주려고 애썼다그 착한 마음과 정성이 갸륵해서 나는 다시 힘을 내어 걸었다.

 

마침 근처에 정대의 고모 친구 분이 사신다고 하여 춥고 고단한 몸도 녹이고 저녁 한끼도 신세 지기로 하였다거의 마라톤 완주하듯 힘겹게 집에  도착했고 저녁 식사로 정갈하게 준비된 일본식 돈까스토마토 샐러드와 은은한 차를 대접 받았다.

 

나의 기침이 심상치 않았고 몸에서도 열이 나기 시작하자 아주머니는 소주잔만한 잔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술냄새가 나는 약을 가져오셨고 나는 냄새 고약한 감기 시럽을 먹는 어린아이처럼 주저하며 약을 삼켰다.  약을 먹고 손님방에서 잠시 눈을 붙일 것을 권했는데 그때 그 손님방 침대에 깔려 있던 이불이 바로 자카란다 꽃과 같은 보라빛이였다목이 너무 아파서 잠이 쉽게 오지 않았지만 계속 자야 한다고 권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30분 정도 누워 있었다.감았던 눈을 떠보면 연보라색 이불과 그 옆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정대가 보였다분명 자고있진 않았는데 열 때문인가 아니면 약 기운 때문인가 뭔가 꿈을 꾸는 듯 몽롱했다.

 

나에게는 미리 정해진 다음 일정이 있었고 정대는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던 나를 역까지 데려다 주고 본인의 이름주소전화번호를 꼼꼼히 메모지에 적어주었다한국말을 하는 고모가독일에 있다며 고모 연락처까지 적어 주었지만 나는 그날 역에서 헤어진 후 정대와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자카란다 꽃이 보라빛으로 활짝핀 낭만적인 오늘천진난만했던 청춘의 기억이 향긋하게 휘날린다비 내리던 싸늘한 베를린을 따뜻하게 기억할 수 있게 해 주었던 재일 교포 3세 청년의 순수하고 따뜻했던 호의는 보라빛이 흐드러지는 화사한 행복으로 오래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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