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Fog
01/22/19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군림하던 대영제국의 앞날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에 휩싸였다.

 

15일 영국 의회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합의안을 부결시켰다. 정족수 634명 중 찬성 202표, 반대 432표. 영국 의정 사상 정부안이 200표 이상의 표차로 부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브렉시트의 앞날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다. 테리사 메이 총리도 정치적 위기 상황에 직면하였다.

 

제1야당인 노동당 당수 제러미 코빈은 부결 발표 직후 정부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정부 불신임안이 하원을 통과하고 14일 이내에 새로운 내각에 대한 신임안이 하원에서 의결되지 못하는 경우 조기총선이 실시된다. 그러나 16일 실시된 불신임안은 찬성 306표, 반대 325표로 부결되었다. 테리사 메이 정부는 19표 차이로 정권을 유지하게 되었다.

 

부결 발표 직후 메이 총리는 코빈 대표를 포함한 야당 지도부와 브렉시트 합의안의 대안을 논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메이 총리는 의회로부터 지지를 받는 새로운 방안을 도출한 뒤 이를 EU와 협상할 계획이다. 만일 정치권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3월 29일 영국은 EU에서 자동 탈퇴되어 아무런 합의 없이 ‘노딜 브렉시트’로 가게 된다.

 

1975년에도 영국은 유럽 경제 공동체(EEC)의 잔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약 67%가 잔류에 투표하면서 EEC 잔류를 결정하였다. 그리고 2016년 6월 유럽 연합(EU) 탈퇴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72.2%의 투표율에 51.9%의 찬성, 반대 48.1%로 탈퇴가 확정되었다. 2년간의 탈퇴 협상 기간 동안 영국 정부와 EU가 협의안을 만들었으나 15일 영국 의회에서 부결되었다.

 

이번 표결에 부쳐진 브렉시트 합의안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내년 말 전환 기간까지 EU하고의 새로운 관계가 정립이 안 되면, 안전장치를 두겠다고 했다. 이 안전장치는 북아일랜드는 관세 동맹과 EU 단일 시장 내에 그대로 두고, 브리튼 섬은 관세 동맹 안에 두겠다는 내용이다. 이는 북아일랜드와 브리튼 섬을 구별하는 것으로, 대영제국(UK)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게다가 이 안전장치를 영국이 일방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 반드시 EU하고 합의를 해야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브렉시트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영국의 주권을 팔아먹었다며 반발이 거세다. 자칫하면 브렉시트가 안 될 수도 있는 합의안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브렉시트 반대론자들은 브렉시트 하자는 얘기 아니냐며 반대하고 있다. 즉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찬성론자, 반대론자 모두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합의안이 부결됐다는 게 브렉시트 자체가 없었던 일로 되는 것은 아니나 유럽연합은 계속 영국이 없던 것으로 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유럽 법원에서도 ‘영국이 일방적으로 이 브렉시트를 자유롭게 철회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렸다. 그러나 영국이 철회를 안 하고 다른 합의안을 도출해내지 않으면 노딜 브렉시트가 단행된다. 예정대로 3월 29일에 자동으로 탈퇴되는 것이다. 합의 없이 브렉시트가 단행되었을 때의 영국에 닥칠 혼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수출규모 5,030억 달러로 세계 수출순위 9위, 수입 역시 세계 5위로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은 영국의 입장에서 관세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대두될 것이다. 또 전 세계로부터 막대한 이득을 걷어 들이고 있는 영국의 금융 산업에도 큰 혼란이 예상된다.

 

현 상황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알고 싶어 런던에 살고 있는 친구와 통화했다. 영국의 혼란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국민들과 정치인들이 일을 저질러 놓고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우왕좌왕 난리가 난 상태이다. 재투표하자는 주장, 지도자를 갈아치우자는 주장, 그대로 밀고 나가자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Mob Justice(중우정치)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으며 결국 EU에 그대로 주저앉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수의 어리석은 국민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사회는 그리스 시대부터 민주주의 가장 큰 맹점이라고 지적되어 왔다. 한마디로 Shamble(아수라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상황이 하나의 거대한 Joke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나 Joke가 아니다. 엄연한 현실이다. 이제 와서 왜 그런 결과를 만들었는가 땅을 치고 후회해도 때는 늦었다. 그렇다고 누굴 탓하고 희생양을 찾으려 해서도 안 된다. 대영제국의 안정은 물론 EU와 온 세계가 물의 없이 순조롭게 나아갈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의회 민주주의의 꽃을 피운 나라 대영제국이라는 전통과 명성에 걸맞게 의회에서 새로운 합의를 이뤄내어 자국은 물론 온 세계에 커다란 피해 없이 지날 수 있는 해결책을 도출해내기를 바란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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