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01/28/19  

해마다 12월에 들어서면 ‘교수신문’은 전국의 대학교수들에게 다음 해에 어울리는 사자성어를 묻는다. 2019년에는 ‘임중도원(任重道遠)’이 1위에 뽑혔다. 『논어(論語)』 태백편(泰伯篇)에 실린 고사성어로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한반도 평화 구상과 각종 국내정책이 뜻대로 이뤄지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많은 난제들이 있으며, 이를 굳센 의지로 잘 해결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현 정권 2년차를 맞아 구태의연한 행태를 답습하는 여당과 정부의 안일한 행태에 불만을 터트리면서 개혁을 지지하는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즉 현재의 국정에 대한 개탄(慨嘆)이며, 문재인 정부에게 초심을 잃지 말고 가라는 바람을 담고 있다.

 

임중도원에 이어 밀운불우(密雲不雨)가 2위에 올랐다. '구름은 가득 끼어 있는데 비는 내리지 않는다'. 중대한 변화는 일어났으나 구체적인 열매가 열리지 않고 있는 아쉬운 상황을 빗댄 것이다. 세 번째는 공재불사(功在不舍)가 꼽혔다. '성공은 그만두지 않음에 있다'. 앞으로 계속 개혁을 밀어붙이자는 뜻이다. ‘운무청천(雲霧靑天, 구름과 안개를 헤치고 푸른 하늘을 보다)’, '좌고우면(左顧右眄, 왼쪽을 바라보고 오른쪽을 돌아다본다)이 그 뒤를 이었다. 모두 현 시국을 우려하면서 잘 헤쳐 나가자는 염원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남북관계 개선과 적폐청산 등에서 나름 진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무엇이 달라졌는가? 북한의 비핵화, 한반도 평화 역시 동상이몽으로 이어지지 않을까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크다. 특히 경제 개혁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경제기조는 아직까지 요원하다. 재벌·부동산·노동·복지·세제 등의 사회개혁은 지지부진하다. 사회 내부에는 반감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긍정적으로 봐달라고 감정에 호소하고 있을 뿐 가시적으로 무언가 뚜렷한 진전은 없다. 대한민국 정부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중국 속담에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고 사람은 유명해지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살찐 돼지는 곧 도살장으로 끌려가게 되고, 유명해진 사람은 교만에 빠져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뜻이다.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보라. 혁명에 성공한 돼지 나폴레옹은 자신들이 비판했던 인간들의 모습을 닮아가면서 결국 변질돼 다른 동물들을 탄압한다. 권력이든 재물이든 지식이든 그것이 올바로 쓰이려면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올인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는 북한에 끌려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민생경제 역시 헛다리를 짚고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적폐청산을 내걸고 출범했지만 현시국은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소모적인 정쟁이 계속될 뿐이다. 여당과 야당이 시정잡배들처럼 이전투구(泥田鬪狗)하고 있다. 같은 당내에서도-여당 야당 할 것 없이- 파벌을 지어 싸움을 그치지 않고 있다. 국민들을 위해서라는 명분만 진실이고 나머지는 다 거짓이다. 세상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짐을 나눠지고 함께 가야 할 사람들이 더 무거운 짐이 되고 있지 않은가. 짐은 더 무거워지고 갈 길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 사심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국정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사사로운 정(情)과 이익(利益)에 끌려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자신과 가족들까지 망가트리는 모습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모두 초심을 망각했다.

 

정치인들은 여론에 휩쓸려 가면서 서로 눈치만 보고 인기몰이에 열중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들까 혈안 되어 있다. 국회의사당이 좁아서 정치판은 유투브로 옮겨졌다. 정치인들은 모두 유투브에서 상대방을 신랄하게 공격한다. 내 편 네 편을 가른다. 국민들도 부부가, 혹은 아버지와 자식이 내 편, 네 편으로 나뉘어서 싸우고 있다. 이 세상에는 내 편 아니면 네 편만 있을 뿐이다. 식당에서도 가정에서도 심지어 학교에서도 우리는 편을 가르고 서로 옳다고 싸운다. 목소리 크고 그때그때 임기웅변으로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언변이 중요하다. 삶을 관조하고 인생에 대해 얘기하려 하면 재미없다고 고개를 흔든다.

 

이대로는 곤란하다. 모두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 인기에 영합해서도 안 되고 사익을 앞세워서도 안 된다. 각자에게 주어진 직분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인지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무거운 짐도 여럿이 나누어 들면 가볍게 옮길 수 있다. 먼 길도 여럿이 웃고 이야기하며 걸으면 가까워 질 수 있다. 서로 비난하고 싸우지 말고 짐을 나누어지고 손잡고 어깨동무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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