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01/28/19  

전쟁 같은 겨울방학의 끝자락, 육신은 물론 영혼까지 너덜너덜 해져 가고 있었다. 그날도 아이들 아침을 챙겨 주고 부랴부랴 씻고 나왔더니 부엌에서 아홉 살 딸이 오빠에게 물려 받아 무릎이 나오고 해진 내복 위에 막내 동생의 작은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인공처럼 예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설거지하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데 왠지 눈물이 핑 돌았다.

 

3남 1녀 중 둘째이자 장녀, 우리집 유일한 딸로 태어나 위로 아래로 남자 형제들에게 치이면서도 엉엉 크게 울지도 못하고 숨죽여 우는 착한 딸. 지금 고작 초등학교 2학년이면서 1학년때부터 네 살 아래인 막내 동생 옷을 챙겨 입히고 매일 양치를 해주고 샤워를 시키는 대견한 딸. 언제나 내 표정과 심기를 살피고 엄마 마음에 들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예쁜 딸. 우리 딸은 바로 이런 딸이다.

 

재작년이었던가 남편이 먼저 한국으로 출국하고 혼자서 네 명의 아이들을 돌보느라 힘에 부칠 때 갑자기 너무 아파 밥을 먹다 말고 드러누운 적이 있었다. 처음엔 소파에 살짝 누웠다가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일단 진통제를 먹고 침대에 누웠다. 머리가 해골 윤곽대로 깨질 듯이 아프고 속이 울렁울렁 토할 것 같으면서 오한이 드는데 이러다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겁이 덜컥 날 정도였다. 식사를 마친 딸이 얼른 나를 따라 올라왔다. “엄마 괜찮아?” 하면서 고사리같은 손으로 조물조물 내 팔도 주무르고 다리도 주무르기 시작했다. 방 밖에서 세 명의 형제들이 노느라 시끄러워지면 얼른 뛰어나가 엄마 아프니깐 조용히 좀 하라며 소리를 쳤다. 딸이 옆을 지키고 있어서 신음이 나오는 것도 억지로 참으로 한동안 누워 있었는데 약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는지 통증이 잦아들어 정신을 차려보니 아직도 딸이 내 곁에서 나를 주무르고 있었다. 얼른 시간을 보니 얼추 3-40분이 지나 있었다. 아이에게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을 받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한 번은 한국으로 출국을 앞두고 잠시 친정집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첫째와 막내가 한방을 쓰고 나는 둘째, 셋째와 같은 방을 사용했는데 그 날은 내가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아이들이 잠든 후에 귀가했다. 잠든 아이들이 깰까 봐 최대한 조심조심 이부자리로 들어가 한켠에 몸을 눕혔는데 갑자기 딸이 벌떡 일어나 앉더니 아무 말도 없이 이불을 내 몸 위에 펴서 얹어주는 것이었다. 마치 자식을 챙기는 어미같은 딸의 행동이 감동적이다 못해 놀라웠던 기억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딸은 나에게 항상 힘이 되어주는 존재였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으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첫 아이를 출산하고 그 사악하다는 산후 우울증 같은 것을 앓았던 것 같다. 육체적으로 심적으로 가장 힘들고 지쳐 있었으며 경제적으로도 상황이 좋지 못했다. 부모와 형제, 남편과 자식이 있음에도 형체를 알 수 없는 외로움과 우울함이 서서히 나를 갉아 먹으며 병들게 했으니 이는 필시 거지같은 호르몬 탓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어두운 터널 속을 헤매고 있을 무렵 우리 딸을 임신했고 금동이라는 태명의 이 아이를 품고부터 모든 상황이 좋아졌다. 아이가 나에게 찾아온 그 날부터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내가 아직 뜨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파릇파릇 싱그럽진 않지만 아직 나에게 패기와 열정, 새로운 일에 대한 열망과 설렘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뭐든 하고 싶었다. 이런 마음을 갖게 되니 하는 일도 잘 풀리기 시작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아주 작게 소규모로 시작했던 사업도 성장을 거듭했고 임신한 몸으로 끼니를 거르고 밤잠을 설치며 종일 일을 해도 즐겁고 신이 났다. 신이 나서 일에 몰두하다 보니 외로워 하고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그후 십 년, 삶의 굽이굽이 up and down을 지나오는 동안 여전히 우리 딸의 존재는 끊임없이 내가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감동과 위안을 주고있다. 항상 엄마의 마음을 읽으려 애쓰며 내가 조금만 피곤한 표정을 지어도 나를 힘들게 하는 요소를 파악하거나 해결하려고 나섰다. 다른 아이들도 제 각기 다른 기쁨을 안겨주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만 딸은 정말 다르다. 엄마가 아파 누워있어도 자기들끼리 시끄럽게 공놀이하는데 빠져 있는 아들들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남자 아이들과는 천지 차이인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딸과 함께 나이 들어갈 날들이 기대된다.

 

딸아, 네가 내 품으로 오는 순간 너는 이미 나에게 전부를 주었다. 지금부터 네가 주는 기쁨들은 모두 덤이라고 생각할게. 꽃처럼 별처럼 예쁘고 귀한 우리 딸,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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