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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 떡볶이
04/23/18  

이번 주 내내 날씨가 꾸물거렸다. 아침에는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듯한 하늘이었고 오후에도 쨍하게 맑아지지 않고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었다. 나는 왠지 이런 날씨에는 따끈한 음식을 바로 먹을 수 있는 포장마차 생각이 절실해지곤 한다. 포장마차는 천막을 친 마차 모양의 다양한 거리 음식을 파는 노점을 일컫는데 신속하게 바로 요기를 하거나 음식을 포장해 갈 수 있다. 또 어떤 포장마차는 밤에 술이나 술과 곁들여 먹을 안주들을 팔아 회사 근처나 집 근처에서 간단하게 한잔하고 싶은 서민들에게 사랑받는다.

 

그리고 우리나라 드라마를 보면 이 포장마차 씬이 빠지질 않는데 우리는 그곳에서 실연당한 주인공이 암담한 표정으로 혼자 깡소주를 마시거나, 알콩달콩 연애를 시작한 커플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국수를 먹거나 어느덧 눈이 맞아 낭만적인 첫 키스를 하는 장면을 수도없이 많이 봐왔다. 그러나 중학생 때 미국으로 이민 온 나에게 포장마차는 드라마 속 풍경과는 한참 다른 기억이다.

 

나에게 포장마차는 앉아서 소주 한 잔 하는 장소이기보다는 후다닥 튀김이며 떡볶이를 흡입하는 장소로 더 기억된다. 어렸을 때부터 숱하게 포장마차를 들락날락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우리 동네 시장가는 길목에 있던 포장마차이다. 이제 막 빻아놓은 햇 고춧가루같은 빨간 천막의 포장마차는 내가 그 동네로 이사했을 때부터 떠나는 날까지 사계절 내내 쭉 그 자리를 지켜왔다. 천막 커버 제치고 들어가 주문하면 지체없이 쑥색 플라스틱 그릇에 달달하고 매콤한 국물 가득 떡볶이가 담겨 나왔다. 내가 떡볶이를 먹는 동안에도 할머니는 쉬지 않고 졸아든 떡볶이에 오뎅 국물 한 국자 부어 넣고 내내 뒤적뒤적 하시며 손님을 기다리셨다.

 

그 시대 엄마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우리집도 늘집밥을 고수했지만 그래도 여름이면 꼭꼭 이집에서 천 원주고 찐 옥수수 서너 개를 사 오시곤 하셨고 나는 학원 다녀오는 길에 주머니에 백 원짜리 한두 개만 있으면 잠시 들려 떡볶이 떡 몇 개 주워먹고 가는 것이 세상 즐거웠다. 빠글빠글 짧은 파마 머리에 자글자글 주름 가득한 할머니가 덤으로 떡볶이 떡 한두 개 더 얹어 주시고 오뎅 국물 한 컵 공짜로 쥐어 주시면 그게 또 그렇게 수지맞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민 오고 7년 만에 처음 고국을 방문했을 때 친구들 소식만큼이나 이 포장마차의 행방이 궁금해서 실제로 찾아 갔었다. 신기하게도 그 포장마차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시 찾아간 포장마차는 기억보다 많이 작았고 주름이 더 많아진 할머니는 구부정한 자세로 옥수수를 뒤집고 계셨다. 고향 할머니 만난 듯 반가워 한참을 바라보다가 선약이 있던 탓에 떡볶이 맛을 보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던 것이 못내 아쉽다.

 

지금도 그때 그 포장마차 떡볶이를 잊을 수가 없다. 유난히 빨간 국물에 떡, 오뎅, 대파와 같이 심플한 재료들로 승부하는데 아무리 수많은 떡볶이를 먹어봐도 그 때 그 맛에 견줄 수가 없다. 요리 꽤나 한다는 친정엄마의 떡볶이도, 떡볶이 하나로 대박냈다는 체인점 떡볶이도 꽤 훌륭했지만 뭔가 부족했다. 어쩌면 내가 그리는 그 맛은 영원히 찾지 못할 내 기억 속 추억의 맛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맛 하나 정도 가슴에 품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 쓰는 내내 포장마차 떡볶이를 상상했더니 몹시 배가 고파졌다. 찾지 못할 추억의 맛은 잠시 접어두고 우리집 부엌 냉장고를 뒤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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