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1.5세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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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 나쁜 사람
02/04/19  

며칠 전에 우리 큰애가 집에 오는길에 엘리베이터에서 우리 동네 택배 기사님을 만났는데 어쩐 일인지 내 나이를 물어봤다고 한다. 처음에는 본인 나이를 묻는 줄 알고 “열세 살이요.” 했더니 “아니 너 말고 너네 엄마!”라고 콕 집어서 다시 물어보더라는 것이었다. 아이는 우물쭈물 하다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답을 못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는데 나는 순간 “어머, 그 아저씨 이상하시네. 왜 갑자기 엄마 나이를 묻고 그러셔?”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딸이 “엄마, 그 아저씨 착해. 착한 아저씨야.”라고 했다. 나는 그 택배 기사님을 별로 마주칠 일이 없어서 몰랐는데 아이들은 같은 시간대에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만나 인사를 하고 지낸 모양이었다.

 

어제는 곧 퇴임하시는 교장 선생님과 학부모 연수가 있어서 아이들 학교에 다녀왔다. 초등학교 1학년인 셋째가 왜 학교에 갔었냐고 묻길래 교장 선생님이 곧 떠나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뭐? 교장 선생님 가신다고? 아…… 교장 선생님 착한데……” 하며 아쉬운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그렇다. 가만 보면 아이들은 사람을 착한 사람, 나쁜 사람 이렇게 두 가지로만 분류하는 경향이 많다. 만화 영화나 동화 속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이 언제나 너무 뻔하게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으로 구분 되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아직 복잡한 세상을 몰라서 그런 것인지 마음에 드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고 “나쁜놈”은 자기네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심한 욕이다. 이렇게 복잡하지 않고 지나칠 정도로 단순하게 흑백으로 나눠버리면 간편해서 좋겠다 싶기도 하고 가끔은 위태롭게 보이기도 한다.

 

어른들은 좀 다르다. 복잡해도 그렇게 복잡할 수가 없다. 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정말 평생을 함께 해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이구나 싶을 때가 너무 많다. 근본적으로는 착하지만 탐욕스러워서 때때로 해를 끼치는 사람, 배타적이지만 친해지면 나름 의리가 있는 사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굴다가 정작 위급한 순간에는 늘 교묘하게 자리를 피하는 사람, 매사에 예의 바르고 착실하기까지한데 가끔씩 화가 나면 이성을 잃는 사람  등등 모든 사람에게 반전이 있기 마련이고 성향도 너무 가지가지라 혈액형, 관상, 별자리 등을 아무리 연구하고 따져봐도 결코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지어지지 않는다.

 

정치인이나 연예인과 같이 기사에 오르내리고 구설수에 휘말리는 유명인들의 이야기들도 그렇다. 그동안 내가 매스컴에서 봐온 이미지만 믿고 있다가 전혀 다른 민낯을 마주할 일이 생기면 이상하게 뒤통수 맞은 것처럼 찜찜한 기분이 든다. 특히 어떤 사건 사고에 대해서 양측의 주장이 너무 판이하게 다른데 양측이 서로 본인이 맞다고 펄쩍 뛰며 정색하면 정말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혼란스러운 경우가 너무 많다. 우리는 누가 시키지않아도 자동으로 판사가 되어 눈에 드러나는 물증을 찾아내고 어떻게든 판단하고 심판하려 하지만 세상 일이 또 그렇게 매번 명쾌하게 해결되지만은 않는다.

 

아이를 통해 내 나이를 물어봤다는 택배 기사 이야기를 했더니 주위에서는 택배사에 신고라도 해야하지 않냐고들 했다. 정말 아무런 사심이나 의도 없이 그저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었겠지만 어쩐지 그런 것조차 조심하고 의심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만은 확실한 듯 하다. 누가 착한 사람인지 누가 나쁜 사람인지 판가름할 수 없는 세상에서 치열하다못해 졸렬하기까지한 진실 공방들이 끊이질 않으니 지켜보는 내내 머릿속이 뒤숭숭하고 피곤해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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