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02/18/19  

남편이 올해 초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그 결과가 다소 충격적이었다. 결과지에 체크된 비만, 내장지방, 고혈압이라는 단어들을 확인하는 순간 남편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귀국한 이후로 부쩍 배가 나오고 살이 찌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검사를 통해서 결과로 접하니 마치 형편없는 성적표를 받은 아이처럼 힘이 쭉 빠졌다.

 

남편은 어릴 때부터 줄곧 말랐었고 그동안 살찌는 것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던 사람이었다. 고봉밥을 한 그릇 뚝딱하고 콜라를 대여섯 잔씩 마셔도 허리 둘레 30인치를 넘어본 적 없더니, 30대 중후반부터 슬금슬금 턱선이 무뎌지고 복부쪽으로 살이 붙더니 언제부턴가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얼굴 좋아졌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나 역시 살이 많이 쪘다. 귀국 후 2-3킬로 체중이 늘었다고 하니 지인들은 그 정도는 괜찮다, 중년에 살 빠지면 나이 들어 보여서 못쓴다며 나를 위로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동안 즐겨 입었던 바지들이 모조리 너무 꽉 껴서 옷을 물갈이 하듯이 갈아치워야 할 판이고 사진을 찍으면 얼굴이 보름달처럼 나오는 바람에 사진 찍는 것도 기피하게 되었다. 살이 찐다는 것은 별로 반갑지도 결코 유쾌하지도 않은 일임이 분명했다.

 

체중이 늘어난 이유로 운동 부족도 크게 한몫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기초대사량이 줄었기 때문에 한창때처럼 같은 열량을 섭취해도 체내에서 덜 소비가 되어 결국 점점 살이 찌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무시무시하다는 나잇살인 모양이다. 그리고 나도 남편도 결국 후덕해지는 중년의 길로 접어들고 만 것이다.  

 

어쨌든 나보다 좀 더 건강 수치가 위험해진 남편을 위해서 한 달 전부터 저녁 다이어트 식단에 돌입했다. 한참 잘 먹고 잘 커야 하는 아이들은 먹던 대로 먹고 남편의 저녁상은 따로 준비했다. 주로 샐러드, 토마토, 아보카도, 닭 가슴살, 닭 가슴살 소시지, 곤약, 두부 등을 상에 올렸다. 아이들이 고기반찬을 먹은 날도,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은 날도 남편 앞에는 다이어트 식단이 올라왔다.

 

첫 1-2주 동안은 신이 나서 매일 매일 새로운 다이어트 메뉴를 준비하며 당장 체중 변화가 생기기라도 할 듯 온 관심이 그쪽에 쏠려 있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록 별다른 차도는 보이지 않았다. 아침, 점심은 회사에서 해결하다 보니 따로 챙길 수가 없고 특히 설 연휴와 가족 여행 중에 고삐가 풀려 연신 먹었더니 아직까지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남편의 다이어트를 주도했던 나 또한 초심을 잃고 그 열정이 시들해진 것이 분명하다. 하긴 내 살도 못 빼는데 남의 살은 어찌 빼겠다고 용감하게 칼을 뽑아 들었는지…… 

 

어제 저녁 남편이 깊은 한숨을 쉬며 “어느새 다이어트도 쉽지 않은 나이가 되어 버렸네.”라고 하는데 어쩐지 그 뒷모습이 쓸쓸하다. 설 연휴 저주에서 벗어나 다시 한 손에는 채찍, 다른 한 손에는 당근을 쥐고 흔들어야 하는 것인가…… 

 

그나저나 내가 요즘 다이어트에 관심을 두고 있어서 그런가 요즘 부쩍 우리 현관문에 스포츠 센터 광고지가 붙어 있고 자주 드나드는 SNS 페이지마다 다이어트 관련 광고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시술이나 다이어트 식품과 음료 등으로 단기간에 살이 빠진다는 광고들은 절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상하게 비포 & 에프터 사진들을 보면 마음이 흔들린다. 그리고 내가 비포 & 에프터 사진의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아주 잠시 해본다. 달콤한 상상 후에 부쩍 식욕이 오르는 것은 기분 탓인가…… 다이어트 후유증인가……

 

나이 지긋한 중장년임에도 건강하고 날씬한 몸을 유지하고 계신 어르신들의 관리 비결이 궁금해진다. 부디 “타고난 것”이라는 대답만큼은 피해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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