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안녕
04/23/18  

나의 첫 차와 작별했다. 1994년형 토요타 캠리로 99년에 아버지에게 물려받았을 당시 정말꿈만 같았다대학에 들어가고도 무려 2년 간 차 없이 이 사람 저 사람 신세를 지며 차를 얻어타고 다녔던 터라 이제 누구의 도움 없이 원하는 곳 어디든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정말 날개라도 단 듯 기쁘고 황홀했었다.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서 아버지와 함께 운전 연습을 시작한 것도 이 차와 함께였다도로가한적한 주일 아침 일찍 성당가는 길에 운전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나에게 운전대를 맡기셨는데 언제나 대장부셨던 아버지가 생명의 위협이라도 느끼 듯 긴장하신 모습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금의 남편을 처음 만나러 가던 날도, 3년 간의 연애 중 샐 수 없이 많은 데이트 때마다 나는이 차와 함께 했다그 당시 잔고장이 많은 오래된 중고차를 타고 다녔던 남편은 내 차가 자신의 드림카라고 했는데 실제로 처음 새 차를 장만할 때 토요타 캠리를 구입하기도 했다학교와 알바 스케줄에 쫓기며 차 안에서 요기를 하고 휴식을 취했던 것도 이 차 안이었고 첫교통사고와 첫 교통 티켓도 이 차와 함께 했다.

 

20년 넘은 차를 그대로 둔다며 어떤 이들은 나를 억척스러운 똑순이 대하듯 했지만 차를 처분하지 않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그저 나는 원래 차에 대한 욕심이 별로없는 데다가 차가 여전히 아무 문제 없이 잘 달려주고 있었기 때문에 처분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던 것뿐이다단골 정비소에서 오일 체인지를 하는 김에 혹시 다른 이상이 없는지살펴봐 달라고 부탁을 드리면 사장님은 왠만하면 그냥 타세요라며 이 차에 뭐하러 돈을 들이냐 하셨고 남편을 향해 미소를 머금고 이제 이 차는 처분하시고 사모님 렉서스 한 대 뽑아주세요라고 농담을 하시기도 했다.

 

무려 23년을 달렸으나 배터리가 나가거나 타이어를 교체해 줘야 하는 평범한 것 외에 큰 문제 한 번 일으키지 않은 착한 녀석이었다그러나 자동차가 나이를 먹는 것은 인간이 노인이되어 가는 과정과 비슷해서 늙어가는 티를 아예 감추지는 못했다페인트가 벗겨지는 외관상문제는 두 차례 페인트 하는 것으로 말끔히 해결되었고 도어 손잡이가 떨어져 나간 것도 수리를 하니 멀쩡해졌다큰 돈 들이지 않고 조금만 손을 봐주는 것으로 해결이되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지난 주말 차를 보내고 나는 꽤나 이모셔널해져서 한참 동안 싱숭생숭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아끼던 물건이나 추억이 깃든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하물며 내 이민 역사와 푸르른 청춘을 고스란히 함께 했던 차였기에 뭔가 형언할 수 없는 짙은쓸쓸함이 찾아 왔다그래도 생판 모르는 사람이 아니고 다행히 우리 아이들을 돌봐주었던 히스패닉 유모에게 보내졌으니 좋은 새 주인과 또 다른 멋진 추억들이 펼쳐질 거라 위안해 본다.

 

20여 년 간 이곳저곳을 누비며 내 발이 되어 주고 내 꿈을 펼쳐준 나의 첫 차여이젠 안녕!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