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03/11/19  

새크라멘토의 어느 모임에 다녀왔다. 2박 3일 모임이 열렸던 컨벤션 센터 앞에는 두 개의 조각물이 있다. 그 조각물들은 앞에서 볼 때와 뒤에서 볼 때 다른 형상이기 때문에 네 개의 조각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조각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의상이나 장신구를 하고 있으며, 고대 유물의 잔해를 형상화한 느낌을 주고 있다. 조각상이라 부르지 못하고 조각물이라고 하는 까닭은 어떤 사람들이나 물체들을 형상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여러 이미지들이 합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사람의 머리와 팔 다리 등이 뒹굴고 있다. 손발이 떨어져 나간 몸통이 잘린 머리통을 밀어내며 누워있다. 게다가 위로 길게 뻗어 세로로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가로로 펼쳐져 있다.

 

조각물의 예술성이나 그 조각이 표현하는 바는 내게 큰 의미를 주지 않았다. 조각의 밑에 쓰인 문구가 내게 강하게 다가왔다. ‘WHERE ARE WE GOING’ 내게 던지는 물음이었다. 주어로만 보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 모두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놀라서 조각물의 앞뒤를 살펴보았다. ‘WHAT HAVE WE THOUGHT’ 우리는 무엇을 생각했는가? ‘WHAT HAVE WE WROUGHT’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HOW ARE WE LOVING’ 우리는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

 

질문은 철학적이고 심오하며 어떤 면에서는 종교적이고 영적인 질문이다. 우리가 삶 속에 존재하며 살아가는 의미와 목적을 묻고 있다. 우리 자신의 존재, 그 존재를 이끌어나가는 존재 방식과 그 방향을 생각하게 한다. 조각가가 관객과 하나가 되어 우리를 주어로 해서 묻는다. 그것을 읽는 사람의 의식 속에 내면화되어 두고두고 되묻는 화두가 된다.

 

또한, 이 조각은 우리 인류와 우리가 쌓아온 문화가 시간과 공간상의 잔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즉 우리 존재의 유한성과 허무를 강력하게 표출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물음들이 더 강력한 힘을 지니며 장엄함으로 다가오게 된다.

 

대개 이런 철학적인 질문은 개인적으로 스스로에게 묻는 것인데, 공공장소에 이렇게 조각으로 전시하며, 우리라는 주어를 사용하여 인류 공동체라는 집합적 무의식에 던지는 거대한 질문으로 승화시켰다.

 

그리고 의문문을 의문 부호 없이 묻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모든 문장은 마침표나 느낌표, 의문부호 등을 찍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물음표를 붙이지 않았다. 쉴 새 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 속에 잠겨 있을 때 소망소사이어티의 창립자, 유분자 이사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만나기로 했다. 여든네 살의 그는 언제나 젊은이이다. 겉모습도 젊지만 그의 꿈과 희망과 열정은 20대보다 더 뜨겁고 단단해 보였다. 그는 만날 때마다 스스럼없이 대해준다. 소망소사이어티에서 LA 지사를 설립했다는 소식에서부터 아프리카에 우물 지어주기 봉사, 치매 노인들을 위한 봉사, 시신 기증 운동 등에 대해 장시간 설명했다. 이어서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자신이 떠난 뒤를 이어 이 활동에 참여할 사람들을 위해 몇 가지 사업을 시작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가 힘차게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모습을 보면서 지난 20여 일간 뇌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네 가지 물음에 대한 의미가 실타래 풀리듯이 풀어지고 있었다.

 

조각물의 작가가 물음에 의문부호를 붙이지 않은 것에 대한 의문도 풀렸다. 작가는 어느 한 분야나 한 가지 것에 한계를 두지 않고 문장의 그 뒤에다 그 어떤 것을 가져다 붙여도 말이 되도록 하기 위해 장치를 한 것이다. 또, 아직 작가의 말이 끝나지 않았음을 의도한 것이다. 그 조각을 만든 후로부터 끊임없이 쉬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것이다. 문장 속의 주어를 WE(우리)로 한 것도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우리들 모두에게 작가가 얘기하면서 작가 자신도 우리들 속에 들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내 이웃과 내 가족은 물론 내가 속한 사회와 더 나아가 인류를 위해 높고 큰 목표로 최선을 다 하는 삶을 살며 우리들, 온 인류가 함께 풀어가야 한다는 결의를 담고 있다.

 

살면서 순간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발버둥치는 때가 있다. 그때마다 앞의 네 가지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남은 삶의 좌표를 찾는 화두로 삼으면 어떨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무엇을 생각했는가. 우리는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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