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맛바람
03/18/19  

6학년이 된 첫째는 올해도 전교 임원 선거에 출마했다. 작년에 큰 기대 안 하고 출마했다가 부회장으로 당선된 것에 큰 힘을 얻은 듯 올해는 반드시 회장이 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나도 이번에는 조금 서둘러서 준비를 도왔고 작년보다 훨씬 완성도 높은 선거 포스터와 선거 소품들이 준비되었다. 결론적으로 선거는 유력한 회장 후보에 밀려 부회장 당선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회장 당선에 고배를 맛본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속으로 '이렇게 아쉬워할 것 같았으면 좀 더 열심히 준비를 하지.'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일단 잘 삼켜내고 아이를 위로해 줬다. 부회장 당선만으로도 훌륭하다며 칭찬해주고 돌아서고 나니 여기저기서 부회장 당선 턱을 내라는 축하 인사가 들려왔다. 아…… 내 선거도 아닌데…… 왜 이렇게 내가 할 일이 많지? 피로가 몰 려왔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난생 처음으로 부반장이라는 첫 감투를 쓰게 되었다. 소극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던 반장을 대신해서 수업 시작할 때마다 대표로 일어나 선생님께 경례를 하고 음악 시간에 앞에 나가 지휘를 하고 어린이 회의 때 회의록을 작성하는 일들이 꽤나 즐거웠다. 앞에 나서서 뭔가를 한다는 게 꽤나 신나는 일임을 맛보게 된 이후에는 줄곧 학교에서 감투를 쓰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60명이나 되는 아이들 중에 내가 좀 더 주목되고 좀 더 많은 책임을 맡는 것이 어린 마음에 어깨 으쓱 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엄마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었다. 요즘 아이들처럼 선거 연설문을 엄마와 함께 준비할 생각은 당연히 하지 않았고 출마하겠다고 엄마에게 미리 알린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반장 선거가 있으면 알아서 출마하고 연설하고 떨어지면 알아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랬고 주변의 친구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학교 준비물이 있으면 엄마한테 돈을 받아 직접 문방구에 가서 구입했고 숙제도 알아서 하고 시험도 알아서 준비했다. 물론 요즘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공부해라, 씻어라, 빨리 먹어라, 숙제 먼저 해라,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와 같이 보편적인 잔소리를 줄곧 들어오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엄마가 나를 도와준 적은 없었다. 대신 준비물을 구입해 주거나 숙제를 대신 챙겨 주거나 시험 전에 모의 시험을 봐 준다든가 문제집을 함께 푼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다. 잘하든 못하든 그냥 내가 알아서 해야만 했고 그게 당연한 줄만 알았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렇게 혼자 알아서 하는 아이들이 많지 않아 보인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엄마들이 마치 연예인 매니저처럼 주위를 맴돌며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고 협조해 준다. 그래서 아예 학교 가정 통신문이나 알림장은 앱을 통해서 엄마에게 바로 전달된다. 엄마가 신경 쓰고 도와야만 한다고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것만 같다. 엄마들이 간섭하고 역할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아이들은 반대로 느긋해진다. 본인이 초조해하지 않아도 결국 엄마가 알아서 도와줄 것임을 다 알기 때문이다. 안 일어나면 깨워주고 안 먹으면 입에 떠먹여주고 성적이 떨어지면 알아서 계획을 세워 주고 친구와 노는 것, 공부하는 것 등 수많은 것들을 엄마가 알아서 챙겨주기 때문에 아이들이 주최가 되어 스스로 나서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요즘 어린 직원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마마보이, 마마걸들이 너무 많다는 다소 생소한 이야기들이다. 아파서 결근할 때도 엄마가 대신 전화를 해서 "우리 아이가 너무 아파서 출근을 못 할 것 같아요"한다고 한다. 뭔가 중요한 결정이나 선택을 해야할 때면 주저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상의하고 조금만 골치 아픈 문제에 부딪히면 쉽게 포기하고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그뿐 아니라 요즘 대학생들은 수강 신청을 엄마들이 대신해주는 경우가 파다하고 심지어 데이트 장소 물색, 이성 친구 선물 주문, 취업 준비며 구직 활동까지 대신 해준다고 한다.  중년이 된 나도 아직 양가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는 경우가 있으니 이런 현상을 반박할 자격은 없지만 좀 궁금하긴 한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부모 자식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친구같이 가까워 지면서 달라진 걸까? 아니면 날이 갈수록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독립 시기가 점차 늦어지기 때문일까? 어째서 그런 것일까? 정말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물론 어느 때고 치맛바람은 존재했다. 내가 어릴 때는 물론이고 그 이전부터 치맛바람이라는 말이 존재했으니 모르긴 해도 유난스러운 엄마들은 분명 있었을 거다. 그런데 지금은 치맛바람이 대중화되고 보편화 되었다고 할까? 너나할 것 없이 엄마라면 당연히 해야하는 엄마의 소임, 책임같은 것이랄까…… 나도 어쩐지 한국에 온 이후로 팔자에 없는 치맛바람을 휘날리기 시작한 듯하다. 치맛바람 조절을 잘 해야만 할 것 같은데 아직은 참 어렵다. 그리고 피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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