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얻다
03/25/19  

한국에 오고 나서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병원에 무척 자주 가게 되었다. 미국에 살 때는 내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는 일은 극히 드물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한국에 온 이후로는 나를 비롯해서 모든 식구가 없던 병도 생기고 있던 병도 더 안 좋아져서 병원 방문이 끊이질 않고 있다.

 

나는 미국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족저근막염 증상으로 두 차례나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아야만 했다. 한동안 왼쪽 발등 통증이 심해 걷는 것이 불편했는데 주사를 맞고나니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보통 발을 많이 쓰는 축구 선수나 오랜시간 걷거나 서있는 사람들이 앓는 병에 걸리다니 정말 뜬금 없었다. 그나마 추측해 본 원인으로는 층간소음을 조심하느라 열심히 들고 다닌 까치발 정도였다.  

 

고국에 돌아온 첫 해에 족저근막염으로 고생하고 작년에는 평생 몰랐던 나의 체질까지 알게 되었다. 감기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내과를 찾았더니 알러지성 비염이 심한 편이라는 것이다. 친정 식구들이 알레르기성 비염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보고 자랐지만 나에게는 전혀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 남들처럼 기온이 바뀌면 콧물을 훌쩍이고 먼지가 많으면 재채기를 하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나도 알레르기성 비염 체질이었다니 꽤나 충격을 받았다. 중년이 될 때까지 몰랐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의사에게 묻었더니 사는 환경에 따라서 증상이 완화되거나 심해질 수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어쨌뜬 사계절이 뚜렷하고 온도차가 심하며 미세먼지가 악명 높은 한국에서 몰랐던 병까지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안과에도 서너 차례 다녀왔다. 눈이 말도 못할 정도로 가려워서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괴로워서 안과에 갔는데 나같은 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의사는 내 눈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서너 종류의 안약을 처방해 주었다. 원인은 알레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약을 넣으면 확실히 호전되지만 곧 다시 간지러워지고 그럼 또 약을 처방 받기 위해 안과에 가야만 한다. 답답한 마음에 완전히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없냐고 물으니 심드렁한 말투로 체질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층간소음이나 날씨, 미세먼지 등의 이유로 평소에 앓지 않았던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우울해진다. 얼마 전 기사에 미세먼지가 각종 질환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잠자는 질병 유전자까지 깨울 수 있다고 하더니 전혀 얼토당토않은 소리는 아닌 모양이다.

 

나이 들어가는 탓이기도 하겠지만 한국에 온 이후로 이곳 저곳 몸에 이상 신호가 오는 것 같아 자꾸 푸념을 늘어놓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 일반 개인 병원들은 미국처럼 몇 장씩되는 서류를 기입하고 서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보통 처음 방문한 환자라도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정도만 기입하고 기다리면 접수 담당 직원이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라고 묻고 별다른 증상이 아니면 체크도 없이 바로 의사를 만날 수 있다. 이게 과연 잘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환자 입장에서 간편하긴 하다. 물론 병원비도 미국에 비해 말도 못할 정도로 저렴하다. 그나마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다시 축복받은 땅 캘리포니아로 돌아가면 이 지긋지긋한 알레르기성 비염과 작별할 수 있게 될까? 이게 이렇게 불편하고 번거로운 병인줄 알았더라면 허구한날 재채기와 코풀기를 멈추지 못하던 친오빠를 좀 더 애틋하게 바라봤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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