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1.5세 아줌마
홈으로 나는야 1.5세 아줌마
엄마는 달린다
04/01/19  

새벽 4시부터 화장실에 들락날락하는 남편의 인기척에 잠에서 깼다. 어제 회사 전무님과의 회식이라고 거하게 회를 먹고 귀가했는데 오래간만의 호사에 속에 탈이 난 모양이다. 오전 6시 15분이면 집을 나서야 하는 남편이 오늘은 도저히 걸어 갈 기운이 없다며 역까지 차로 태워다 줄 것을 부탁하여 그러겠노라 했다. 좀처럼 그런 부탁을 하지 않는 남편이다. 서두른다고 했는데도 아슬아슬하게 역에 도착했고 몇 분 후 남편으로부터 문자가 왔는데 아쉽게도 타야 하는 지하철을 놓친 모양이다. 에휴……!

 

집에 돌아오니 오전 6시 30분, 아이들 기상까지 30여 분이 남았으니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가려는 찰나, 첫째가 안방 문을 열고 들어온다.

 

“엄마, 나 열 좀 재 줘.” 발그레한 얼굴로 들어온 아이의 이마를 짚어 보니 굳이 체온계를 들이밀지 않아도 백프로 열 당첨! 오늘 학교에 중요한 발표도 있다고 했는데 안 되겠다. 병원부터 데려가야겠다. 요즘 꽃샘추위와 환절기 때문인지 학교에 독감 비상령이 내려졌다. 어떤 반은 스무 명 남짓한 반에 아홉 명이 독감으로 결석이라고 하니 덜컥 겁이 났다. 애 많은 집에서 한 명이라도 독감에 걸리면 전염에 대한 공포가 이루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매달 이런저런 이유로 찾게되는 동네 내과에 가니 아직 영업 시간 전인데도 이미 대기 환자들이 많다. 휴우 다행히 독감은 아니란다. 약국에 들려 처방 받은 약을 픽업하고 막내를 유치원에 데려다 줬다. 아뿔싸! 오늘 유치원 같은 반 친구 생일이라고 5천 원 상당의 선물을 준비해 오라고 공지했었는데 깜빡 하고 만 것이다. 선생님께 물어보니 오전 10시까지만 갖고 오면 괜찮다고 한다. 우리 아이만 선물이 없어서 당황하면 안 된다. 아직 시간이 있다! 뛰자! 다행히 집에 미리 사서 쟁여둔 여분의 장난감이 있어서 후다닥 포장을 마치고 짧은 축하 메모도 써서 붙여주고 다시 유치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다행히 10시 전에 도착. 에휴……!

 

다시 시간을 확인한다. 오늘 엄마를 모시고 강남에 있는 치과에 예약이 있다. 앱으로 버스 시간을 확인하니 내가 타야 하는 버스가 5분 34초 후 정류장에 도착한다. 앗, 아슬아슬하다. 뛰자! 이번 버스를 놓친다고 병원 예약에 늦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안 이상 뛰지 않을 수 없다. 뛴다.

 

집 근처에도 치과가 많지만 30년지기 친구가 근무하는 치과라 일부러 강남까지 갔다. 간단한 진료를 마치고 나이에 비해 건강한 치아라는 칭찬까지 받고나니 슬슬 허기가 느껴진다. 친구와 함께 인근 짬뽕 맛집을 찾았다. 점심 시간이라 인산인해, 대기 손님들이 많아 서둘러 먹고 나왔다. 모처럼 만났는데 밥만 먹고 헤어지기 아쉬우니 근처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씩 하고 소소한 수다에 하하호호 웃음으로 소화를 시킨 후 헤어졌다. 병원으로 복귀해야 하는 친구는 오히려 아직 2-30분 여유가 있다고 했지만 나는 막내 유치원 셔틀이 도착하기 전에 귀가 해야만 한다. 미리 앱으로 버스 시간을 확인하니 대략 35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오니 45분 전에 움직이면 문제가 없을 듯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같은 유치원 버스를 타고 오는 이웃집에 나의 상황을 알리고 나도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우리 동네 사거리 정류장에 나를 내려주고 유치원 셔틀 도착까지 10분 정도 남았다. 빠른 걸음으로 충분할 것 같지만 왠지 불안하다. 유치원 버스가 오늘따라 일찍 도착하기라도 하면 어쩐담…… 엄마가 없다는 사실에 아이가 당황할지도 모른다. 뛰자! 오늘 하루만 몇 번째 뛰는 것인가…… 종아리가 뻐근하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이게 바로 오늘 나의 일기이다. 아침부터 별일 아닌 것들로 나는 달리고 달렸다. 고작 오늘 아침부터 오후 2시 반까지의 일과지만 사실 요즘 나의 평범한 일상이기도 하다. 특별한 날이 아닌 그저 숱한 그렇고 그런 날, Ordinary day 인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딱히 하는 일도 없이, 그럴 듯한 이유도 없이 매일 매일 고단한 모양이다. 이제 집에서 그냥 쉬었으면 좋겠건만 당장 저녁 밥부터 올려야 한다.

 

휴우……! 오늘도 엄마는 달린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