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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면 너무 힘든 인생
04/08/19  

얼마 전 신문 기사에 “튀면 너무 힘든 인생, 평타가 목표인 무나니스트”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요즘 2000년생들은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무난한 삶을 선호한다는 기사였다. 2000년생들의 부모 세대인 X세대 (1965-1980년생)는 남들과 다름을 추구했고 다름을 우수성이나 성공의 열쇠로 생각했지만 그들의 자녀들은 노력해 얻은 ‘다름’으로 우수해져도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묘하게 공감 가는 기사였다. 내가 바로 X세대를 거쳐 부모가 되었는데 내가 좀 특이하거나 개성 있는 것을 권하면 아이들은 평범하거나 무난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아이 학교 전교 회장 선거를 할 때도 그랬다.  다른 후보들과 달리 전학생 출신이라는 핸디캡이 있으니 무조건 다른 후보들과 달라야 승산이 있다고 특이하게 하라고 계속 훈수를 두었지만 아이는 나의 제안은 하나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놀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좀 더 평범하게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렇게 된 데는 학교가 한몫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아이가 전교 회장 선거에 출마할 때 선거 공약 중 하나로 “무비 데이”를 내세웠다. 미국 학교에서는 자주 갖는 행사인데 참석 가능한 학생들만 학교에 모여 함께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다. 주위에서도 재미있겠다며 반응들이 좋았다. 그런데 공약을 제출하자마자 담당 선생님이 바로 제동을 걸어오셨다.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였고 일단 아이에게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일러주고는 한국 저작권협회로 문의 전화를 걸었다. 확인해보니 DVD로 출시된 지 6개월 이상된 영화는 저작권에 문제 없이 단체 관람이 가능하다고 하니 미국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같은 날 오후 늦게 학교 담당 선생님께서 먼저 전화를 주셨길래 확인된 사실을 알렸더니 선생님 음성이 뭔가 미적지근한 게 달갑지 않은 눈치다. 몇 마디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뭔가 새로운 일을 벌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업무 과중에 대한 두려움이 팍팍 느껴졌다.

 

한국에 살면서 자주 느끼게 되는 일이다. 회사, 공기관, 학교와 같은 조직에서는 대체로 나서는 사람, 새로운 제안을 하는 사람, 아이디어가 다양한 사람을 환영하지 않는다. 그냥 원래 하던대로, 기존 방법대로, 하던 사람들이 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게 편하고 수월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 와서 새로운 제안을 하면 물을 흐린다고 생각하고 획기적인 제안이라도 하면 “어 그거 좋은데 당신이 직접 맡아서 하면 되겠네.”하는 식으로 일 폭탄을 던져준다. 그러다보니 눈치만 슬슬보다가 결국 그 나물에 그 밥, 늘 하던 사람들이 늘 하던 식으로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튀면 너무 힘든 인생, 말로는 창의적인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사회는 창의적인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보니 다들 그냥 평범하고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 꿈일 수밖에 없다. 어릴 때 영재 소리까지 듣던 똑똑한 아이들은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며 그저 안정적인 공무원이 최고라고 확신한다.  2019년도 국가 공무원 9급 공채 경쟁율이 39.4:1이었다니 말하면 무얼하나……  

 

아무리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힘들기 때문에 평범한 인생이야말로 가장 잘 풀린 인생이라지만 최종 목표가 안정적인 공무원, 중산층, 평범한 무나니스트라니 뭔가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 아이들만큼은 평범하고 안정적인 인생도 좋지만 좀 더 재미있는 꿈을 꾸워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나는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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