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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삼릉 훈련원에서
04/15/19  

서삼릉(西三陵)은 3기의 능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종 계비 장경왕후의 희릉, 인종과 인종비 인성왕후의 효릉, 철종과 철종비 철인왕후의 예릉이 조성되면서 한양 서쪽에 있는 3릉이라 하여 '서삼릉'이란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서삼릉에는 이외에도 3기의 원과 1묘, 왕자·공주·후궁 등의 묘 47기, 태실 54기가 자리 잡고 있다. 즉 서삼릉은 조선 왕실의 공동묘지인 셈이다.

이 서삼릉 인근에 한국보이스카우트의 요람인 보이스카우트 중앙훈련원이 있다. 보이스카우트 지도자들은 이 훈련원에서 기본훈련, 상급훈련을 비롯한 각종 훈련을 받았다.

  

경기도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2년 뒤 서울로 전근오자마자 보이스카우트를 담당했다. 주말에 학생들과 산과 들로 나가는 일이 잦다보니 교사들이 맡기를 꺼리는데, 마침 새로 부임한 젊은 교사에게 배당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야외활동을 좋아했다. 방학이면 산과 들로 강이나 바다로 대원들과 야영을 다녔다. 주말에도 각종 행사로 바쁘게 움직였다. 보이스카우트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소정의 훈련을 받아야 했다. 기본훈련, 상급훈련, 부교수 훈련 등을 차례로 받았다. 심지어 필리핀에 가서 교수 훈련까지 받았다. 전교생을 보이스카우트로 가입시켰으며, 교사들이 보이스카우트 지도자 훈련을 받고 지도자가 되도록 했다. 전교생이 참여하는 야영대회도 했다. 바로 이 서삼릉 중앙훈련원에서. 그뿐만이 아니다. 필자가 근무하던 학교에서 활동무대를 넓혀 성동지구 연합회 사무장을 맡았고, 서울연맹 국제담당 훈육위원이 되었으며 한국보이스카우트 중앙본부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와 계간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 기간 중에 대원들을 이끌고 대만 잼버리, 스웨덴 잼버리, 호주 잼버리 등에 참여했고 알라스카에서는 캠프스텝으로 봉사했다. 한국잼버리 준비위원으로도 활동 했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서삼릉 중앙훈련원을 자주 방문해야 했다. 왜냐하면 각종 파견단 발대식을 그곳에서 하기도 했고, 훈련원에서 있었던 각종 훈련에 스텝으로 봉사도 해야 했다. 중앙훈련원은 보이스카우트 지도자들의 성지와 같은 곳이었다.

  

한국 방문 중에 보이스카우트 중앙훈련원을 방문했다. 스카우트 선배가 운전하는 차에 동승하여 갔다. 어찌 감회가 따르지 않겠는가. 처음 가는 곳처럼 낯설었으나 훈련원이 가까워질수록 예전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함께 간 선배 두 분은 지난 해 행사 때문에 다녀갔다는데도 처음 가는 길 같다고 했다,구불구불한 길을 돌고 돌아 도착했다. 예전에 있던 그 자리에 전과 똑같이 그대로 중앙훈련원 건물이 있었다. 지붕이 높게 하늘을 향해 솟아 있고 계단을 올라 들어서면 정면에 강당이 있고 왼쪽으로 사무실들이 있었다. 예전의 그대로 거기 있었다.

  

훈련원 직원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서삼릉에서 유명하다는 맛집 '서삼능 보리밥'에서 보리밥에 꼬다리를 대접 받았다. 훈련원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도 함께 활동했던 선배임을 알게 되었다. 교장으로 은퇴하고 보이스카우트 지도자로 계속 활동했는데 올 초에 훈련원장직을 맡게 되었다며 70대 중반에 일을 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그치지 않고 옛이야기가 이어졌다.

  

모처럼 찾은 훈련원을 그냥 떠나기 아쉬워 훈련원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중앙훈련원 건물에서 야영장으로 내려오는 비탈에 낯익은 이름이 검은 돌에 새겨져 있었다. 한국연맹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고 김규영 씨의 기념비였다. 출생연도와 사망연도만 새겨져 있고, 그가 평소에 즐겨 했던 말, 한 마디가 새겨져 있었다.

  

내가 1993년 2월 필리핀 마켈링 훈련소에서 교수 훈련을 받고 있을 때 김규영 씨는 세계 보이스카우트 연맹 아시아태평양지역 사무총장으로 필리핀 마닐라에 근무하고 있었다. 교수 훈련이 끝나는 날, 훈련소를 방문했던 김규영 씨는 나를 반겨 주었고, 저녁에 따로 불러내어 마닐라로 데려가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시내관광을 시켜주었다. 그날 저녁 무엇을 봤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화려한 빌딩들 뒤에 다 쓸어져 가는 움막집들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희미하다. 정확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의 따뜻한 마음이다. 후배를 위해 당신의 시간을 기꺼이 쪼개 대접해 주었던 그 마음은 아직도 따뜻하게 내게 남아 있다.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람은 떠났어도 추억은 영원하다.

 

 몇 걸음 옮기니 고 안승기 씨의 기념비가 있었다. 그를 추모하며 심은 향나무 앞에 한국 스카우트 원로, 그 밑에 그의 이름 석 자와 1918~2014 라고 적혀 있었다. 한국에서 1970년대~1980년대 스카우트 지도자 활동을 했던 사람치고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서대문지구 사무장을 오래 했던 그는 언제 어디서나 웃음을 주었다. 당신이 망가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노력했던 분이다.

  

서삼릉 훈련원 뜨락에서 만난 김규영 총장과 안승기 대장을 기린다. 김 총장의 기념비에 새겨진 말씀을 되새겨 본다. '청소년의 눈에 비치는 것은 어른이 하는 말이 아니라, 어른이 하는 행동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따끔한 교훈이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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