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1.5세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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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04/15/19  

다시 태어나서 세상을 다시 살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단호히 거절할 것이다. 내 인생이 후회없이 완벽했기 때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생이 대단히 형편없었기 때문도 아니다. 그냥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럴 리는 없지만 만약에 어쩔 수 없이 내가 다시 살 수 있게 된다 해도 기본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역시 지금처럼 비슷한 모습으로 비슷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또 다른 길이란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굳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면 나는 한번쯤 남자로 살아보고 싶다. 여자로서 겪는 크고 작은 불편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무엇보다 남자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 형제들이 있었고 지금도 남자 아이들을 셋이나 키우고 있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남자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  존 그레이의 베스트셀러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와 같은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그때 잠시뿐이었다. 요즘엔 아들 가진 부모들을 위한 책이며 강의가 샐 수 없을 만큼 많고 딸로 태어난 엄마는 이해하기 어려운 아들의 세계를 알려준다는 아들 연구소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과연 얼마만큼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아무리 공부해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눈치다. 집에 와서 바로 적용 해보려 애를 쓰지만 결국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하고 어느새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말이다.

 

엄마들이 아들한테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너는 도대체 왜 그러니?”라는데 나도 백 번 동감한다. 엄마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일들이 매일매일 생겨나기 때문이다. 엄마가 야단을 치고 있는데도 뒤돌아서면서 방금 지적받았던 똑같은 행동을 하고 끊임없이 말도 안되는 말과 장난을 생산해 내는 통에 뒷목을 잡는 일이 부지기수다.

 

며칠 전 셋째가 숙제로 장래 희망에 대한 글을 써야 했는데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는 어른이되면 엄마처럼 그냥 집에 있으면 안 돼?" 엄마를 집에서 놀고 먹는 줄 아는 어이없는 발언에 일단 1차 황당함과 기분 나쁨을 한 번 넘기고 물었다. 

 

"왜? 그럼 커서 돈은 어떻게 벌려고?"

 

아이는 특유의 천진난만한 얼굴로 두눈을 반짝이며 "그냥 엄마가 좀 도와주면 안 돼?" 한다. 기가 차서 아무말도 못했다. 그리고 아주 잠깐 백수 아들 뒷바라지 해주는 노년을 상상해봤다. 아무리 상상이라지만 충분히 끔찍했다. 성인이 되면 바로 독립시킬 생각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역시나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이번 생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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