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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나들이
04/22/19  

선배가 창덕궁을 구경시켜주겠다고 했다. 안국역 3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후배도 함께하기로 했다. 작년에는 셋이 만나 올림픽공원을 걷고 추어탕을 먹었었다.

 

토요일 오후 창덕궁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한복을 빌려 입은 외국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녔고 젊은 남녀 무리들이 봄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상춘객이 되어 봄날의 고궁을 거닐었다. 걷기 싫어하는 후배는 가능하면 빨리 나가기를 원했지만 무언가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어하는 선배는 이리저리 데리고 다녔다. 창덕궁은 그리 넓지 않았다.

 

창덕궁에서 비원이나 창경궁으로 건너 갈 수 있으며, 두 곳 다 입장료를 따로 더 내야 했다. 나는 비원으로 가고 싶었다. 그런데 비원은 입장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한 번 입장할 때마다 100명으로 제한했다. 우리도 입장권을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섰다. 그러나 곧 입장권이 매진되었다며 다음 입장은 2시간 뒤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더 기다려서라도 비원을 구경하고 싶었으나 후배가 툴툴거렸다. 이재명 도지사를 위한 집회에 가야 하는데 선배를 만나기 위해 빠지고 왔다며 2시간씩 기다리며 입장할 필요가 있냐고 했다. 어디 가서 밥이나 먹자고 했다.

 

선배가 종로 뒷골목 동태찌개 맛있게 하는 집으로 안내했다.

크고 누런 양푼에 동태, 야채 등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찌개가 끓는 동안 후배가 이재명 지사 얘기를 또 꺼냈다. 지금 정치인들 중에 이렇게 훌륭한 분이 없다며 모 배우가 그를 끌어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수포로 돌아가지 않았냐고 했다. 이미 TV와 신문 등을 통해 눈과 귀가 짓무르도록 들어왔기에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선배가 술잔을 권하면서 이제 찌개가 먹을 만하게 끓었다고 했다. 잔을 내려놓기무섭게 후배는 하던 얘기를 계속하려고 했다. 선배가 말했다. 우리끼리는 정치 얘기는 하지 말자고. 그러자 후배가 말했다. 사람이 어찌 정치나 이념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있냐고.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 바로 사상이나 이념을 갖고 있고 이에 대해 논할 수 있다는 데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형은 좌냐 우냐 밝히라고 했다. 선배가 뭐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끝나기도 전에 후배는 내게도 화살을 날렸다. 형은 어느 쪽이냐고. 난 그 어느 편에도 서고 싶지 않다고 했다. 둘 다 잘 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지 않은가.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후배가 소리쳤다. "형은 중도네 중도, 우익 성향의 중도", "무슨 소리냐. 양쪽 그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으면 중도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드디어 폭발했다. "왜 사람들을 둘로 가르고 그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으면 중도냐?"

후배에게 간청하듯이 말했다. 제발 그만 하자고.

 

후배는 어떤 관념이나 관점에 대해 우리를 자기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 억지로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말하는 어떤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현실 그 자체이다. 그것을 서술하는 언어가 아니다. 이름은 구별하기 위하여 부르는 호칭에 지나지 않는다. 실재가 아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후배처럼 실재의 본질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제 마음대로 단정하고 규정하려고 든다.

 

선배는 청계천으로 안내했다. 물흐르는 청계천을 걸었다. 선배가 광장시장에서 빈대떡에 막걸리 한 잔 하자고 했다. 동태찌개가 소화도 되지 않았는데 맛있는 것을 대접하고 무언가 하나라도 더 구경시켜 주고 싶어하는 선배의 마음이 느껴져 거절하기 어려웠다.

 

선배가 안내한 빈대떡집에서 녹두 빈대떡에 막걸리를 시켜 마셨다. 후배는 자리에 앉자마자 또 이재명 지사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음 주 토요일에 또 성남시 법원 앞에서 집회가 있다며 나보고도 참석하라고 했다. 마음의 평화가 깨져 가고 있었다.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세상이 가져갈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우리 결단이나 자유를 빼앗아 갈 수는 없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행복, 우리의 평화, 우리의 내적 자유를 유지할 수 있다. 숨쉬고 걸을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한 우리는 평화롭고 행복할 수 있다.’는 틱낫한 스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호흡을 조절했다.

 

빈대떡 집을 나서면서 선배가 21일 선후배들이 모여 산행을 하기로 했다면서 오라고 했다.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후배는 선배를 모셔다 드릴 겸 선배집에서 자고 가겠다고 했다. 두 사람과 헤어져 반대 방향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가는 동안 생각하니 나도 그들과 같은 방향의 열차를 타고 한 정거장(종로 3가역)가서 5호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동대문역에서 내려 반대방향으로 가는 전철로 바꿔 탔다. 종로 3가에서 내려 5호선으로 갈아탔다.

 

내 안의 평화가 잠시 깨져 있었다. 집으로 가는 동안 평화를 위해 마음을 달래야 했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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