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책의 날
04/29/19  

지난 주 화요일(23일) 선배가 점식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다. 그 자리에 동기생 한 명도 함께했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자리를 옮겨 커피까지 대접 받은 후 선배와 작별인사를 하고 귀가를 서두르는데 친구가 시간이 있으면 한 군데 구경시켜주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데리고 간 곳이 코엑스 빌딩 지하에 있는 ‘별마루 도서관’이라는 대형 서점이었다. 높고 커다란 책꽂이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고 평일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책을 고르고 있었다. 또 한쪽에는 앉아서 혹은 선 채로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친구는 “오늘이 책의 날이라 자네에게 이곳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4월23일이 '세계 책의 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친구는 어떻게 기억하는 것일까? 또 나를 그곳으로 데려간 이유는 무엇일까?

 

이 모든 의문을 친구는 단 한 마디로 해결해주었다.

“자네가 LA에서 한국어 신문을 하고 있기 때문에 관심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고교시절 나도 문예반에서 활동을 했었거든. 그리고 자네에게 책을 사주고 싶으니까 맘에 드는 책을 한 권 골라보게.”

 

1995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제정한 책의 날은 도서출판을 장려하는데 그 첫 번째 목적이 있다. 아울러 독서와 저술 및 이와 연관된 저작권 보호를 강화하며, 책의 창조적, 산업적, 정책적, 국내적, 국제적 측면 등 다양한 면모를 끌어내려는 노력에서 제정한 것이다.

특별히 4월 23일로 결정한 것은 책을 사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는 스페인 까딸루니아 지방 축제일인 ‘세인트 조지의 날(St. George's Day)’에서 유래되었다. 1616년 4월 23일은 세계적인 문호 셰익스피어와 스페인이 낳은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세르반테스가 사망한 날이기도 하다.

 

몇 달 전 LA 서점을 찾았을 때 그 주인의 말이 떠오른다. “문학서적 판매가 전체 매상의 5%미만이다. 잘 팔리는 책의 대부분은 자기 계발서, 재테크에 관한 실용서이며, 그 다음에 흥미나 취미 서적이 더러 팔리고 문학서를 찾는 이들은 거의 없다.” ‘월간 문학’이나 ‘창작과 비평’ 같은 문학잡지는 아예 갖다 놓지도 않는다고 했다. 일 년에 서너 권 팔리니까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때 주문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문학서적을 읽지 않는다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슨 책이든지 읽는 것이 중요하다.

 

과연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몇 권의 책을 읽을까?

지난 2016년 한국의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인의 생활시간 변화상'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하루 평균 독서 시간은 6분(평일 기준)에 불과했다. 또 성인의 연간 독서율은 65.3%이었다. 연간 독서율이란 1년 동안 교과서·수험서·잡지·만화 등을 제외한 일반 도서를 1권 이상 읽은 사람의 비율을 말한다. 거꾸로 해석하면 한국 성인 가운데 약 35%는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셈이다.

 

또 작년 2월, 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7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연간 독서율은 59.9%에 불과했다. 성인 10명 중 4명은 1년 동안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리 없을 것이다.

문제는 성인 연간 독서율이 1994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계속 내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1994년 조사를 처음 시작할 당시 성인의 연간 독서율을 86.8%였다.

 

책을 읽지 않고 사는 것은 눈앞의 현실만을 보고 사는 것이다. 책을 통해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벽을 허물고 현실을 초월한 가능성의 세계를 엿본다. 또 책 읽는 행위 자체를 나 아닌 타인과의 소통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역사와 지리, 시대의 제약을 넘어서는 토론과 대화의 심포지엄이 바로 독서다.

 

독서 속에서 사고와 의식의 지평이 넓어진다.

흔히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 이는 대단히 진부한 핑계이다. 시간 날 때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기 위해 시간을 내야한다. 책 읽는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자신의 일상을 잘 살펴보면 낭비되고 있는 시간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독서 시간을 따로 떼어 놓을 필요도 없이 시간이 나면 책을 손에 잡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요즈음은 굳이 책방에 가지 않아도 된다. 인터넷 세상에서 주문할 수도 있고, 전자책을 하나 장만하면 손쉽게 원하는 책을 다운 받아 읽을 수 있다. 책이라는 물리적 개념에 얽매이지 말고 읽기라는 열린 개념으로 독서를 생각한다면 이 세상은 읽을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지금 필자는 울릉도로 향하는 여객선 안에서 그날 친구로 부터 선물 받은 책을 읽으며 뱃멀미를 이겨내고 있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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