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 프리웨이
04/23/18  

탈까 말까오렌지카운티에서 엘에이를 가야 할 때 거리상으로는 가장 가까움에도 불구하고워낙 트래픽으로 악명이 높다 보니 항상 망설이게 되는 5번 프리웨이. 5번 프리웨이는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이라면 너무 잘 알겠지만 미국 남북축 최서단 고속도로로 캘리포니아주,오리건주워싱턴주를 모두 통과하며 미국의 고속도로 중 유일하게 멕시코 국경과 캐나다 국경을 접촉하고 있다.

 

이십여 년 간 오렌지카운티에만 거주한 나에게 5번 프리웨이는 뭔가 남다른 추억과 향수를지닌 특별한 길이다미국에 온 첫날도 아마 5번 프리웨이 위를 달렸다내가 머릿속으로만상상했던 미국과 다른 황량함에 당황하면서도 간간히 보이는 높게 뻗은 팜트리를 보며 이곳은 미국이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아련하다그때 내 나이 열네 살이었다.

지금은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 오렌지카운티에 한인 식당이나 한인 상점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시절에는 맛있는 한식을 먹기 위해서나 한국산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서 엘에이를 찾는 일이 종종 있었다한국에서 유명하다는 새로운 음식점이 들어오면 기대감을 잔뜩 품고 엘에이원정에 나섰고 분위기 좋은 카페나 최신 시설을 갖춘 노래방에 다녀온 친구들의 후기를 듣는것도 꽤나 재미난 일이었다엘에이로 향하는 5번 프리웨이 위에 있으면 지방사는 소녀가 서울 상경하는 기분이랄까...… 뭔가 설레는 두근거림이 있었다.

 

대학교 때 엘에이에 있는 한인 정형외과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첫 장거리 운전에 떨리는가슴으로 운전대를 잡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시도때도없이 속절없이 겪는 트래픽에 하늘로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꿈꾸며 어느새 운전도 기다림도 익숙해졌다하루는 애나하임에서 엘에이로 출발하려고 하는데 자동차 개스경고등에 불이 들어왔다개스경고등에 불 들어와도 엘에이 왕복이 가능하다는 출처가 모호한 카더라’ 소문이 생각났고젊었던 탓인지 어리석었던 것인지 무모한 호기심이 발동해  경고등이 들어온 채로 엘에이를 왕복하기도 했었다차마다 다르겠지만 일단 내 차로는 성공했으나 운전하는 내내 가슴졸였던 것을 생각한다면 절대 추천하지 않는 경험이다.

 

대학 졸업 후에는 어바인에 살면서 애나하임에 있는 직장으로 출퇴근을 위해 5년 간 매일 매일 5번 프리웨이를 달렸다퇴근길에 펼쳐지는 총천연색의 하늘을 볼 때면 피곤하고 힘들었던 하루가 보상되는 기분이었고 이 세상에 미운 사람도이해 못 할 일도 없을 것만 같았다.또한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의 행복도 알았다.

 

친정 집 갈 때도 5번 프리웨이는 함께 했다배터지게 먹고 마시고 놀다가 집으로 향할 때 시간이 맞으면 디즈니랜드에서 불꽃놀이가 한창이었다디즈니의 불꽃놀이는 5번 프리웨이 위에서 볼 때 가장 가깝고 아름답기에 그곳을 지날 때마다 축복받는 느낌이었다늘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터지는 불꽃놀이도 5번에서 만나면 마치 날 위해 준비한 기대하지 않은 깜짝 선물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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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프리웨이를 타고 샌디애이고며 샌프란시스코로 수차례 여행길에 오르기도 했다황폐한사막부터 사계절 옷을 갈아 입는 끊이 없는 들과 밭 그리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태평양 해안까지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여정이었다부모를 따라 여행길에 오르던 소녀는 어느새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태우고 5번 프리웨이를 달렸다.

 

나의 이민 역사나의 젊음나의 직장 생활나의 여행나의 결혼나의 가족나의 학교늘나의 삶과 함께 한 5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 나는 이제 5번 프리웨이를 타고 귀국 길에 오른다새롭게 펼쳐질 삶에 걱정 반기대 반이지만 아무 것도 모르던 열네 살소녀가 이만큼 자라 네 아이의 엄마가 되었으니 앞으로 무서울 것도 못할 것도 없겠다 싶다.앞으로 고국에서 펼쳐질 1.5세 지니의 이야기도 많은 기대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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