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낳으면 애국자라니
05/06/19  

언제부턴가 나는 애국자라고 불리고 있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자녀가 넷이라고 하면 대체적으로 ‘힘들겠다’, ‘대단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데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유독 “애국자”라고 많이들 불러준다. 그렇다. 요즘 한국에서는 아이 셋 이상을 낳으면 애국자라고 한다. 그렇다고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을 비애국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만큼  우리나라의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캠페인이 한창이었다. 이 구호 때문인지 3명 이상의 자녀가 있는 집들은 자녀 수를 밝힐 때 눈치를 살피며 부끄러워해야 했다. 국민학교라고 불렸던 초등학교는 한 반에 60명이(지금은 한 반에 20명 남짓) 넘는 아이들이 오전, 오후 반으로 나누어서 다닐 정도로 아이들이 많았다.

 

국민들이 정부의 방침에 지나치게 충실했던 걸까? 강산이 세 번쯤 바뀌고 나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대표적으로 손꼽는 청년 실업, 여성들의 사회 진출 등만으로 한국의 저출산 경향을 설명할 수 있을까?

 

솔직히 한국의 복지는 미국과 비교했을 때 전혀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일부는 더 우수해 보인다. 나는 미국에서 네 명의 자녀를 출산하고 키웠지만 세금 혜택 외에는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했다. 저소득층에게는 다양한 혜택과 지원이 따르지만 중산층에게는 혹독하리만큼 쉽지 않은 생활이었다. 맞벌이를 하면서 어린 자녀들의 보육비를 벌기 위해 매달 마음을 졸이며 부단히도 애를 쓰며 치열하게 살아야 했다.  

 

그러나 한국은 나라에서 0-5세 어린이집의 보육료 전액을 지원하고 유치원도 보육료의 일부를 지원해서 실제로 부모가 부담하는 비용이 그리 크지 않다 (물론 영어 유치원과 같은 특수 유치원 제외). 게다가 올해부터 0~5세 유자녀 가구에게 아동 수당도 월 10만 원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미국처럼 저소득층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소득에 상관 없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지원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반신반의한다. 한 달에 10만 원을 지원해 준다고 과연 아이를 낳을까?

 

나에게도 기혼임에도 아이를 갖지 않는 친구가 있는데 이유를 물으니 아이를 불행한 나라에서 불행하게 키우기 싫다는 것이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학교 폭력, 사교육 전쟁에 대학 입시 비리, 알바 시작하면 최저 시급에 갑질하는 업주나 손님들, 취업하려면 청년 실업, 비정규직에 열정페이, 어렵게 정규직 되면 간부 갑질, 조기 퇴직 등 힘겹게 살아가야 할 것이 뻔히 보이니 시작도 하기 싫다는 것이다. 내 자식이 또 다른 피해자나 희생자가 되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다둥이 엄마 대표로서 뭐라고 한마디 해야 했지만 친구의 불안한 마음과 국가에 대한 불신에 대해  딱히 그럴 듯한 말로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다던 그 옛날 우리 조부모 세대, 부모 세대만해도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있고 꿈이 있었다. 열심히 일해서 자식들 공부 시키는 재미가 있었고 아끼고 모으면 집을 살 수 있었고 가계가 쑥쑥 커가는 맛에 힘든 줄도 모르고 일했고 개천에서도 용이 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요즘엔 흙수저는 뭘 해도 안되는 세상이라고들 말한다.  실제로 주위에서, 뉴스에서, 드라마 속에서 버젓이 보고 들으니 이제는 가혹한 현실을 부정하거나 모른척 할 수가 없다.

 

이런 세상에서 애 낳는 사람을 애국자라 부르고 매달 10만 원의 아동 수당을 지급한다고 과연 아이를 낳고 싶어할까? 정부 정책이나 지원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국민에게 국가와 사회가 함께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믿음을 주는 것이 저출산 문제를 푸는 첫 단추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평범한 시민들이 희망을 품고 꿈을 펼칠 수 있는 나라가 된다면 굳이 매달 십만 원씩 지원해주지 않아도 절로 아이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아이를 낳으라고 부르짖지 않아도, 아이를 낳는 것이 애국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아이를 낳고 싶은 사회가 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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