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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
05/28/19  

도대체 뭐가 좋은지 모르겠어

그렇다고 딱히 내가 뭘

싫어하는지도 모르겠어

생각하기 귀찮아

내가 나를 잘 모를 때

선택하기조차 어려울 때

어떻게 보면

호불호 강한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

 

힙합가수 우원재의 노래 ‘호불호’ 가사의 일부이다. 요즘 젊은 가수인 듯한데 가사 내용에 굉장히 공감한다. 나도 곧잘 비슷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질문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가장 행복했던 순간,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 제일 친한 사람 등등 가장, 제일로 한 가지를 특정해서 골라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지면 질문이면 잠시 생각하고 뭐라도 지어낼 수 있어서 괜찮은데 면전에서 이런 질문을 받는 것처럼 난감한 일이 없다. ‘이런 질문에 술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있긴 한 걸까?’ 갑자기 궁금해지긴 한다.

 

얼마 전에도 대화 중에 어떤 분이 제일 좋아하는 색깔을 물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색깔은 없고 옷은 주로 화이트, 그레이를 좋아하지만 그냥 색은 다 좋아하는 편이라고 답했더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머 굉장히 호불호가 뚜렷하실 것 같은데 의외네요?" 라고 말했는데 이런 말은 과연 칭찬일까?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친한 사람들끼리는 이런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소개팅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 역시 노잼(재미가 전혀없음)이다.

 

남편은 나에 비하면 호불호가 있는 편으로 장소, 사람, 음식 등 좋고 싫은 것이 대체로 명확하고 한결같다. 본인이 믿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관대하고 희생적이지만 본인 관심 밖 사람들에게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그런 남편을 봤을 때 처음에는 좀 냉정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막상 겪어보니 불필요하게 에너지나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 꼭 필요한데 좀 더 집중할 수 있어서 부인으로서는 꽤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남편의 호불호는 내가 딱히 뭘 먹어야 할지, 어딜 가야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을 때 눈부신 활약을 한다. “오늘 뭘 먹지?”, “오늘 뭘 하지?”라는 질문 앞에 남편은 항상 두세 가지의 제안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제안들 중 내가 선택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이보다 더 편할 수가 없다. 회사 간부쯤 되어야 누릴 수 있는 호사랄까? 수많은 옵션들 중 모든 상황을 반영하여 고르고 골라 엄선된 몇 가지만 검토하고 결재를 내리면 된다. 어쩌면 이런 남편 때문에 스스로 할 수 있는 결정도 미루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주말이 되면 뭘 먹을까? 어디 놀러갈까? 라는 반복되는 질문 앞에 늘 "글쎄…..."라고 답하곤 하는데 이번 주는 내 스스로 결정을 해볼까 한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과 가장 싫어하는 음식이 딱히 없지만 분명 선호하는 음식과 덜 선호하는 음식은 있으니깐. 그리고 가고 싶은 곳과 가기 싫은 곳이 선뜻 떠오르진 않지만 내가 좋아하지 않는 요소들은 분명 있으니깐. 일단 사람이 너무 바글거리거나 지나치게 더운 곳은 피하고 싶다. 5월의 마지막 주, 신록의 5월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곳으로 나가봐야겠다.

 

이 글을 쓰는 내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하지만 역시 어렵다. 그리고 어차피 세상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마저 든다.  오늘 제일 맛있는 음식은 짬뽕이지만 내일 그 음식이 크림 파스타가 된다한들 과연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어차피 처음부터 어떤 답이 나오든 별 상관이 없는 문제였던 것이다. 다음부터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고민하지 말고 적당히 둘러대면 되겠다. 예를 들어 가장 좋아하는 색을 물으면 그날 입고 있는 옷 색깔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물으면 그날 먹고 싶은 메뉴로, 가장 좋았던 여행지를 물으면 가장 최근에 다녀온 여행지로 답하면 될 것 같다. 나처럼 호불호가 강하지 않아 이런 질문에 난감한 적이 있었던 분들은 함께 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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